[우리말 이야기 38]
10월이면 들려오는 노래, ‘잊혀진 계절’
해마다 가을이 깊어가는 이맘때면 자주 들을 수 있는 노래가 있습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벌써 30년도 더 전에 이용이 불러 유명해진 ‘잊혀진 계절’이지요. 그런데 이 노래의 제목과 가사에서는 사람들이 자주 저지르는 실수가 나타납니다. 바로 ‘잊혀진’과 ‘잊혀져야’라는 말입니다.
동사를 피동형으로 만들고 싶으면 피동 접사 ‘~이’, ‘~히’, ‘~기’, ‘~리’를 집어넣거나 ‘~지다’라는 피동 접미사를 붙이면 됩니다. 현재의 문법 체계에서 ‘잊다’에는 ‘~히’ 한 가지만 붙일 수 있으므로 ‘잊혀진’은 ‘잊힌’으로, ‘잊혀져야’는 ‘잊혀야’로 써야 하지요. 오랫동안 익숙하게 들어왔기에 ‘잊힌’보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들리기도 하지만, ‘잊혀진’은 현재로서는 바른 표현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린 시절부터 너무 열심히들 영어 공부를 한 탓인지, 이처럼 중복 피동형이나 필요 없는 피동형을 쓰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녀는 천사라고 불리워질 만큼 착하다.”에서 ‘불리워질’은 피동형과 사동형이 세 차례(리+우+지다 : 부르다→불리다→불리우다→불리워지다)나 겹쳐 어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것저것 다 빼고 그냥 ‘천사라고 부를 만큼’ 또는 ‘천사라고 할 만큼’ 이렇게 쓰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영어 동사 ‘do’의 뜻이 여러 가지이듯, 우리말 ‘하다’도 많고 많은 뜻이 있는데 왜 그걸 썩히는지 아쉽습니다.
물론 ‘불리워지다’를 무조건 ‘하다’로 고쳐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어린 시절, ‘말이라 불리워진 사나이(The man called horse)’라는 서부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때는 ‘말이라 이름 붙은 사나이’라고 쓰는 게 좋겠지요.
사동 접미사 ‘~시키다’라든가 피동 접미사 ‘~되다’, ‘~지다’ ‘~되어지다’ 같은 것을 꼭 써야 하는지 잘 살펴보기 바랍니다. ‘~시키다’나 ‘~되다’는 대개 ‘~하다’로 바꿔 쓸 수 있고, ‘~지다’는 빼 버리는 게 옳은 경우가 꽤 많습니다. (물론 ‘우거지다’, ‘사라지다’, ‘넘어지다’, ‘떨어지다’처럼 원래 피동형이 아닌 말이나, ‘미루어지다’, ‘멀어지다’, ‘주어지다’처럼 쓰는 게 자연스러운 경우도 있습니다.) 더욱이 ‘~되어지다’ 같은 말은 아예 없는 말이니 절대 써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불필요한 피동 표현 몇 가지를 고쳐 봅시다. 피동형뿐 아니라 주어나 목적어 등 다른 부분까지 바꾸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 거짓말시키지 마라 →
㉡ 문이 열려지지 않는다 →
㉢ 이는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
㉣ 한국인들에게는 그것이 극복되어져야 했다 →
㉤ 그들에 의해 조작되어졌던 →
㉥ 지어진 지 20년 안팎 된 아파트 →
㉦ 특정 이미지로 규정지어지는 것을 →
이들은 다음과 같이 고치면 됩니다. 바르게들 고치셨나요?
㉠ 거짓말하지 마라.
㉡ 문이 열리지 않는다.
㉢ (우리는) 이를 반드시 시정해야 한다.
㉣ 한국인들은 그것을 극복해야 했다.
㉤ 그들이 조작했던 → 그들이 조작한 → 그들이 꾸민
㉥ 지은 지 20년 안팎 된 아파트
㉦ 특정 이미지로 규정되는 것을
몇 가지 짚어 봅시다. 먼저, 우리말은 주어를 쓰지 않아도 되는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서양말에 물든 탓인지 필요 없는 주어를 굳이 쓰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마땅히 주어가 되어야 할 것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엉뚱한 말이 주어가 되는 일도 흔합니다. 하루빨리 고쳐야 할 이상한 버릇이지요. ㉢과 ㉣, ㉤을 살펴보세요.
다음으로, 순우리말이나 우리식 표현을 많이 쓰고 싶어도 ‘적절한 표현이 부족하고, 뜻이 잘 통하지 않을 뿐 아니라 문장도 길어져서 비경제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또한 그릇된 생각입니다. 관심을 가지고 바르게 쓰려고 끊임없이 애를 쓰다 보면 어느덧 익숙해집니다. 그리고 반드시 길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을 보세요. 11 글자를 5 글자로 줄였지만 뜻은 오히려 더 뚜렷해지지 않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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