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는 학생들의 종합적 소양을 넓히기 위해 학교에서 공부뿐 아니라 체육과 건강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한다고 이미 알려진 바 있다. 이러한 탓에 삼 년간 머리를 숙이고 공부했던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한 여름 밤의 축하 파티가 아닌 혹서기의 스파르타식 군사훈련이다. 방학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은 마침 군사훈련이 시작되는 시기이다. 36도의 고온과 항저우의 습도가 더해진 이곳 캠퍼스에서는 여전히 사방에서 우렁찬 구호가 들린다. 올 여름, 나는 귀국 날짜를 늦춘 뒤, 몰래 그들의 군사훈련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래서, 쥔쉰(軍訓)이 뭔데?
쥔쉰은 중국 전역의 학생들에게 주어진 일종의 국방교육이다. 중국의 국방교육법에 의하면 쥔쉰은 군사적 훈련을 통해 학생들의 정치적 각오를 일깨우고, 애국심을 기르며, 강한 인내심과 정신력을 키우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중국학생들은 쥔쉰을 중학교,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입학할 때 한 번씩, 총 3번을 받게 되는데, 그 기간과 내용이 조금씩 다르다. 이를테면 대학교의 쥔쉰 기간은 15일로, 기숙사를 사는 학생이 대상이기에 15일간 잠자는 시간 외에 모든 시간이 군사훈련 일과에 해당한다. 이에 반해 중학교나 일부 기숙사가 없는 고등학교에서는 7-10일 정도로, 집에서 통학을 하며 짧지만 굵은 군사훈련 기간을 보내게 된다.
쥔쉰의 시기는 학교마다 다르지만, 보통 개강 전인 9월 초에 진행된다. 항저우는 지난해 9월에 G20 회담 지역으로 배정되는 바람에 모든 항저우의 대학교들이 개강을 지연시켰고, 쥔쉰은 부득이하게 올해 여름방학 직후로 연기됐다.
그들의 일과
그들의 일과표를 한 번 보자. 아침 5시 반에 기상해 45분부터 30분간 체조를 한다. 그리고 6시 15분부터 30분간 씻고 난 뒤 한 시간 동안 아침 식사를 한다. 아침을 먹으면 8시부터 오전 내내 훈련을 하고, 12시가 되어서야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나서는 2시 50분까지 휴식을 취하고, 오후는 오전과 같은 훈련 및 행진을 한다. 저녁을 먹고 9시까지 자유시간이 끝나면 30분 동안 점오를 하고, 이 모든 것이 끝나면 10시 소등이다.
자유시간이 조금 많아 보인다고? 큰 오산이다. 이건 그저 일과표일 뿐. 그들의 자유활동에는 ‘자유’가 없다. 그들은 주어진 임무 또는 내용상 부족했던 훈련을 이 시간에 보충한다. 이렇게 하루에 대략 16시간의 일과를 마치는 데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래서 아침부터 비몽사몽한 상태인 학생들은 빵을 씹으며 꾸벅꾸벅 조는가 하면, 교관이 잠시 떠나는 동안 주변 풀밭에 다 같이 푹 쓰러져 쪽잠을 자는 모습도 많이 보인다.
중국 친구의 말에 의하면, 고등학교 시절에는 몸을 자주 쓰지 않아 생활습관이 다소 고정적이고, 이러한 탓에 대학교에 진학할 때에는 신체능력이 많이 저하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대학교 군사훈련 중에는 갑자기 쓰러지는 학생들이 많고, 훈련의 강도 또한 부득이하게 고등학교 때 보다 낮춰줬다.
학교 안의 군대
아무리 민간인 출입이 자유이고, 배경이 캠퍼스에 대상이 학생이라 해도, 절대 야영 캠프나 스카우트를 상상해선 안 된다. 그들은 철저한 군대의 위계질서를 지키고 조직사회를 구성한다. 한국 군대에서 소, 중, 대, 연대 등 부대체제가 있듯, 중국에서 쥔쉰을 하는 15일 동안에도 비슷한 부대체제가 도입된다. 부대의 가장 작은 단위를 구성하는 것은 다름아닌 반(班)이다. 그 위로는 배(排), 연(連), 단(團)이 있으며 가장 큰, 그리고 모든 학생을 포함하는 부대단위는 사(師)이다. 사는 쥔쉰을 하는 한 학교의 전체 학생이 포함되기 때문에, 마지막 날 거행되는 열병식은 사단의 열병식이기도 하다.
또한 그들은 육군, 공군, 해군으로 삼분화 돼있다. 절강대학교 학생은 입학과 동시에 자신의 소속 학원(學園)이 정해지는데, 학원은 총 3개로 각각 육군, 공군, 해군을 분담한다. 학원은 쉽게 말하면 계열이다. 모든 학과는 한 학부나 대학에 속해 있고, 각 대학들은 크게 인문계열, 상경계열과 이공계열로 귀속되는데, 각 학원은 이러한 계열과 비슷한 개념이다. 하지만 어느 학원이 어느 군을 가는지는 학교마다, 때에 따라 다르다.
이 더운 날, 무슨 훈련을?
항저우의 여름은 참 덥다. 게다가 장마가 막 시작된 지금은 습기까지 더해져 불쾌지수가 일년 중 최고치에 육박한다. 하지만 여전히 캠퍼스 내에서는 여기저기서 우렁찬 구호가 들린다. 위에서 설명했던 부대 구조 중 중간 규모에 해당하는 연(連)대가 캠퍼스를 행진하며 외쳐대는 소리다. 구호는 연대마다 다르지만 박자는 같다. 이를테면 3연대인 싼리엔(三連)의 구호는 “三连精英,绿装红颜,学贯中西,爱国志坚”으로, 그 뜻을 이해하자면 중서(中西)를 통달하고 굳은 의지로 나라를 사랑하자는 의미이다. 중국은 이러한 네 글자를 네 번 끊어 외치는 식의 구호가 대동단결의 상징적 의미로 사용된다.
행진은 캠퍼스 가장자리를 크게 돌면서 진행된다. 여름에 차마 보기 두려운 두께와 긴 소매를 가진 군복은 학생들의 모든 땀을 끌어 모은다. 이 때문에 모든 학생들은 1.5리터의 일회용 물병을 손에 들고, 수분이 부족할 때마다 한 입씩 마셔주며 몸을 축이고 다시 행진한다. 글쎄, 그들이 흘린 땀이 1.5리터보다 덜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이렇게 행진을 한 바퀴 하고 나면 그 다음은 대열 맞춤 연습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한 쪽 다리를 불쑥 올림과 동시에 두 팔은 장난감 병사처럼 모아야 한다. 그리고 올렸던 다리가 땅에 닿음과 동시에 다른 쪽 다리가 또 불쑥 올라와야 한다. 이런 기계적 동작으로 정해진 거리를 대열에 맞춰 걷는 것이 대열 훈련의 핵심이다. 만일 대열 중 한 명이라도 흐트러지면, 전 대열이 다시 원점복귀다.
글을 마치며
굳이, 하필 이런 날씨에 쥔쉰을 하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깝기도, 멋지기도 하다. 하지만 먼 훗날 군대에 있을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 식은 땀이 등을 흠뻑 적신다. 지금 쥔쉰을 하고 있는 학생들은, 그 과정이 딱딱하기만 하지는 않다고 한다. 남녀가 공동으로 훈련을 받기 때문에 서로간의 애정이 싹 트기도 하고, 같이 고생을 했던 전우애는 깊이 남아 대학 생활 내내 좋은 친구로 지내는 경우가 많다.
앞서 쥔쉰을 소개하며 정의에 의한 주된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정치적 각오와 애국심의 양성이 주된 목적이라 하지만, 이방인인 내가 보아왔던 쥔쉰은 이런 것들과 조금 달랐다. 고단하고 짜증나기만 하는 매일의 일과 속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동기들과 서로를 다독여주며 우정을 쌓고, 엄격한 상관의 명령에 응해가며 고난도 임무 및 훈련을 완수해내는 성취감을 이뤄내는 것. 이것이 내가 그들에게서 보았던 쥔쉰의 주요 의미였다.
학생기자 위재현(저장대학교 경제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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