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국가의 성패를 좌우하며 국정의 한 축을 담당했이던 경제는 개인의 삶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다. 인간의 합리적 삶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는 점차 학문으로 발전하게 됐고, 수많은 이론들을 양산하며 경제학은 체계화된 모습을 갖췄다. 과연 어떠한 경제학자들이 경제학 발전에 힘썼으며, 이들의 이론과 사상은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경제학을 확립시킨 ‘아담 스미스’
스코틀랜드의 철학자이자 고전파 경제학자인 아담 스미스는 1723년 출생했다. 경제학자로 활동하기 전까진 도덕철학자로서 더욱 두각을 나타내었다.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스코틀랜드에서 보낸 그는 어릴 때부터 학업에 두각을 나타내며 14살의 나이에 글래스고 대학에 입학했다. 스미스는 이후 장학금을 받으며 옥스퍼드 벨리올 칼리지에 진학했지만 그와 맞지 않는 학문적 성향으로 인해 옥스퍼드를 떠나게 됐다. 이후 그는 벤자민 프랭클린, 프랑수아 케네, ‘인성론’의 저자 데이비드 흄과의 활발한 학문적 교류를 통해 폭넓은 경제, 인문학적 소양을 쌓았으며 훗날 그의 주장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1776년 ‘국부론’을 펴내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는 곧 사회 전체의 이익과 조화로 연결된다고 주장했다. 노동이 부의 원천이며 효율적인 분업만이 사회를 풍요롭게 할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경제의 균형을 이루며, 수요자와 공급자 모두의 이익을 도모하며 사회 자원의 효과적인 분배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제시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이러한 이론들은 독자들에게 시장경제와 분업의 개념을 상세히 설명했으며 현대 경제학의 기틀을 마련했다.
절대우위와 비교우위를 제시한 ‘리카르도’
영국의 고전파 경제학자인 데이비드 리카르도(David Ricardo)는 나폴레옹 전쟁 기간 동안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 그가 경제학자로 활동할 당시 영국에는 산업혁명의 여파로 실업률 폭등,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계급대립 등 다양한 사회, 경제적 문제들이 형성됐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리카르도는 자유무역을 언급하며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비해 재화(물건)를 적은 비용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절대우위,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 비해 적어도 한 물품은 낮은 비용으로 대량생산할 수 있다는 비교우위를 제시해 경제적 혼란에 빠진 영국에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후진국이 선진국에 비해 불리한 입장에서 자유무역을 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단점을 지니곤 있지만, 당시 산업화가 가속화되어 과잉 생산을 면치 못한 영국에게는 이러한 부작용들을 상쇄하기 위한 실용적인 대비책이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들이 자유무역을 시행할 때 절대우위와 비교우위 이론을 채택하고 있다.
수정경제론을 제창한 ‘케인즈’
케인즈(Keynes)는 기존경제학을 부정하며 세계경제의 변화를 이끈 영국의 경제학자이며, 근대 경제학자 중 국제사회와 세계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손꼽힌다. 1883년 케임브리지에서 출생한 그는 알프레드 마샬의 제자로 지내며 케임브리지 학파를 형성했고, 경제잡지
그는 당시 운영되던 경제체제인 모순이 있다고 판단해 1919년 그의 저서 ‘평화의 경제적 결말’을 통해 “자유방임의 자본주의는 끝났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전세계적인 지지를 얻게 됐다. 케인즈의 이러한 예측은 현실이 됐는데, 당시 미국은 생산량이 소비량을 상당한 수치로 상회하며 기업 투자의 위축을 초래했고, 이는 생산량의 축소로 이어지며 실업자는 급증하게 됐다. 전례 없는 대공황은 호황기를 누리던 국민들에게 큰 좌절감을 안겨주었고, 미국, 일본, 유럽 등 자본주의 국가들은 모두 극심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현상)과 경기침체를 겪어야 했다. 유례없는 대공황은 ‘시장의 자유’를 명시한 자유방임주의가 모순과 단점을 명확히 보여주었으며,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정책을 시행하며 경기 회복을 도모했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국가의 개입을 통해 완화시킨다는 수정자본주의를 수용한 뉴딜정책은 점차 효과를 나타냈고, 수정자본주의가 널리 퍼지며 세계경제는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게 됐다. 수정자본주의를 주장한 케인즈는 이후 세계경제의 혁신을 이끈 인물로 평가됐으며, 그의 경제학 연구와 저서들은 현재 다수 기관들의 연구와 국가 경제 정책에도 인용되어 현대 경제학의 형성에 기여했다.
학생기자 조민서(상해한국학교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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