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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아이별곡 (阿姨别曲)

[2017-11-16, 11:05:31] 상하이저널

길고 긴 여름의 끝 찬바람이 시작되던 어느 날 갑자기, 그녀는 열쇠꾸러미 하나만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들어와 조용히 할 일을 끝마치고는 현관문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더니 한숨을 쉬며 할 얘기가 있다고 했다. 일하는 요일을 바꾸고 싶다고 했는데 개인사정상 어렵겠다고 하니 그럼 다른 사람을 구해보라는 한마디 말을 남기고는 뒤돌아나갔다. 꽤 긴 시간을 함께 했던 그녀와 이렇게 헤어지게 될거라고는 단 한번도 상상한 적이 없었다. 5년전 처음 우리 집에 왔던 그 날 이후 누구보다도 성실했고 아이들을 예뻐했고 의심을 살 만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던 그녀였다. 무리한 요구를 한적도 없었고 긴 연휴에도 빨간 날짜를 제외하고는 출근해서 묵묵히 할 일을 했던 그녀였기에 현관 앞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열쇠꾸러미가 주는 충격은 꽤 오랫동안 나를 힘들게 했다.


갑자기 닥친 상황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던건지, 본의 아니게 그녀를 섭섭하게 했던 건 아니었는지 찬찬히 지난 날들을 되짚어 보았다. 그런데 생각할 수록 실연당한 연인처럼 원망의 마음만 커져갔다.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건지, 때가 되면 섭섭하지 않게 홍빠오도 챙겨주고 좋은 자리에 소개도 많이 해줬는데. 떠나기 전날까지도 정리해뒀던 옷과 생활용품들을 기분 좋게 챙겨갔었는데, 이렇게 일방적인 통보로 5년 남짓한 세월을 끊어버린 그녀가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아이를 너무 믿지 말라던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오르며 이런 게 뒷통수를 맞는 건가 싶어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다가 떠오른 의심의 파도, 뭔가 없어진 게 있나? 주변에 워낙 손타는 아이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잠깐 의심의 촉을 세우기도 했었다. 하지만 바닥에 떨어져 있던 1마오 하나도 테이블에 그대로 올려 놓던 사람이었다.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엄한 사람을 잡고 싶지는 않았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생각의 고리는 어느덧 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처음 상하이에 왔던 그 시간 그 때로 돌아가 있었다.


폭염으로 연신 40도를 오르내리던 여름날이었다. 회사일로 바쁜 남편은 우리까지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아직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던 큰아이와 돌쟁이 둘째를 데리고 이삿짐을 정리하는 일도 오롯이 내차지였다. 상하이의 기후를 고려하지 않고 장식에 혹해서 계약한 집은 막상 들어와 보니 곰팡이에 누수까지 하자 투성이었고 수리를 습관화 하라는 부동산의 기가 막힌 조언을 거울삼아 공사를 생활화하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도저히 혼자서는 감당이 안되는 일상에 지쳐가고 있을 때쯤 우리집에 오게 된 그녀 덕분에 한숨 돌릴 마음의 여유도 생겼고, 좀더 쉽게 일상으로 안착할 수 있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참 특별한 인연이었고 고마운 사람이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가사독립”을 선언했다. 오래간만에 모범주부모드를 가동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안하면 티가 나는 집안일 앞에 설 때마다 자존심도 없이 그녀가 그립다. 굵은 손마디가 갈라져 피가 나도 아픈 아이가 있어 일을 쉴 수 없다던 그녀에게 이번 선택은 불가피한 최선이었을거라 이해하기로 했다. 문득 상하이로 이주한지 십수년이 넘도록 한번도 와이탄 구경을 못 가봤다던 그녀의 쓸쓸한 대답이 떠오른다. 아쉬운 마무리였지만 나의 시간을 함께했던 그녀에게 앞으로도 좋은 일들이 가득하길 빌어본다.

 

보리수(nasamo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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