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상하이에 고속철이 개통됐다는 소식에 여름방학을 맞아 가까운 항저우로 여행을 계획했다. 사실 항저우가 목적이 아니고, 고속철 타는 것이 목적이었다. 사람이 없을법한 평일을 골라 당일치기로 다녀올 생각에, 1주일 전에 기차표를 예약하고 홍차오 기차역으로 향했다. 하필 당일 비가 와서 갈지 말지를 한참 고민했지만, 기차표 취소수수료도 아까웠고 어차피 고속철 타는 게 목적이었기에 일찌감치 길을 나섰다.
역에 도착한 아이들과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잔뜩 긴장이 됐다. 분명 평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차역은 사람들로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예약한 표를 받기 위해 창구에 줄을 서긴 섰는데 도무지 줄이 줄지를 않았다. 급기야 기차출발이 20분도 채 남지 않았다. 나는 창피함을 무릅쓰고 줄 맨 앞으로 가서 출발시간이 다 되어 먼저 표를 바꾸겠다고 양해를 구했지만, 본인도 바쁘다며 양보를 해주지 않아 결국 얼굴에 철판을 깔고 무조건 창구에 여권을 들이밀었다. 이렇게 해서 출발 5분전에 간신히 기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큰 아이는 내가 새치기를 해서 기차를 탔다며 항저우 가는 내내 나를 나무랐다. 고속철을 탔기에 망정이지 느린 기차 탔음 귀에 딱지 앉을 뻔 했다. 돌아오는 기차에선 기차역에 사람만 좀 없어도 기차 타고 여행 다니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중국에서 첫 장거리 기차를 탔던 건 20년도 더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엔 터콰이(特快)라는 기차가 가장 빠른 기차였다. 서전에서 베이징까지 딱딱한 침대칸(硬卧) 3층에서 혼자 잠만 자며 43시간을 2박 3일에 걸쳐 탔던 적이 있었다.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 다리가 휘청했다. 그 후로 베이징에서 칭다오 가는 기차를 탄 적이 있는데, 갈 땐 침대칸 끊어서 잘 갔는데, 올 땐 표를 못 구해 딱딱한 좌석(硬座)을 끊어 28시간을 앉은 채로 자다 깨다 하면서 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28시간을 앉아있으면 사람다리도 코끼리 다리처럼 커지고 무게 또한 무거워져 제대로 걷기가 힘들 정도가 된다. 붓기도 몇 날에 걸쳐 서서히 빠졌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젊었고 뭘 잘 몰랐기에 가능했던 여정이었으리라. 이젠 돈 주고 하래도 못 할 지난날의 추억거리가 되었다.
나에게 기차란 이렇게 치열하고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적어도 작년 국경절 연휴를 맞기 전까지는. 언제부턴가 우리집 식구들은 사람에 치이는 게 싫어 연휴 때는 집밖을 나가지 않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 돼있었다. 그러다 작년 국경절 때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어디든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경절 연휴를 코앞에 두고 어딜 갈 수 있을까 싶었지만, 기차표만 있음 어디든 가리라는 생각으로 검색을 해보았는데, 의외로 기차표가 꽤 많이 남아 있었다. 일단 가까운 곳에 숙소와 표를 예약해 놓고 연휴 첫날 홍차오 기차역으로 향했다. 예전 같은 불상사를 막기 위해 이번엔 아예 표를 발권해서 역사 안에 있는 안내소에 맡겨두는 서비스까지 신청해 뒀다. 그래도 사람이 많을 것을 대비해 기차출발 두 시간 전에 역에 도착했다.
역 안에 들어서는 순간 상상과는 전혀 다른 풍경에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국경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비 오는 평일에 항저우 갈 때보다도 사람이 없었다. ‘사람들이 다 어딜 간거지?’ 난 너무 신기해서 2층 식당가에서 여유롭게 햄버거를 먹으며 아래층 대합실을 찍어 같은 시간 공항에 있는 친구에게 전송을 했다. 얼마 안 있다 푸동공항에 있는 친구로부터 몇 장의 공항사진을 전해 받았다. 공항입구부터 출국심사대까지 사람이?! 사람들이 다 공항에 가 있었나 보다. 그 후로 우리가족은 연휴봉인을 해제하며 틈틈이 기차여행을 즐겼다. 이번 설에도 연휴시작 이틀을 남겨두고 ‘说走就走(shuō zǒu jiù zǒu 말한 것은 바로 행동으로 옮긴다)’를 외치며 평소보다 인파가 조금 더 많아진 기차역을 통해 멀지 않은 곳으로 편안하게 여행을 다녀왔다.
도시 발전과 함께 점점 높아 지는 생활수준으로 이젠 기차역도 예전의 기차역이 아니고 공항도 예전의 공항이 아니다. 그래도 이 것이 아직은 상하이 같은 큰 도시에서만 볼 수 있다는 것을 기차 타고 2시간만 나가보아도 바로 알 수 있다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다.
반장엄마(erinj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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