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쯤 된 비파(枇杷)나무가 대문 바로 옆에 서있다. 10년전 만해도 그냥 존재만 했었는데 언젠가부터 많은 사람들의 발 길을 머물게 한다. 비파가 열리는 초여름이면 온갖 새들의 일용할 양식 창고로 변해 한동안 각종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무 아래는 새들의 임시 화장실이 되는 부작용도 있지만.
대문 밖에 나와 있는 비파를 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고 아예 사다리를 가져와 안에 있는 비파를 한 바구니 따다가 누구든지 먹으라고 써서 밖에 내놨다. 낮에는 눈치 보느라 안가져가나 싶더니 밤새 텅텅 비어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비파나무가 정말 잘 자랐다고 한마디씩 해서 그런지 매해 상상이상으로 주렁주렁 열린다.
새들도 사람들도 하도 맛있게 먹길래 나도 하나 먹어 봤다. 즙이 뚝뚝 떨어지면서 새콤달콤한 게 배도 살구도 아닌 것이 먹을만했다. 네이버에 당장 들어가 비파의 효능을 찾아 봤다. 기관지에 좋고, 항산화 작용, 피부미용, 천식 감기에 좋고 항암 식품이며 아토피에 좋고, 비만에 효과가 있고 등등. 거의 만병통치약 수준이었다. 누군가 파랑새는 자기 집 처마 밑에 있었다고 했던가. 만병통치약은 우리집 대문 옆에 있었다.
비파를 새도 먹고 사람도 먹고. 예전에 10여년 살다 간 우리 라브라도 강아지 가비도 떨어진 비파를 먹고 온 마 당에 비파 씨를 뿌려 놨었다. 그때는 사람은 못 먹는 과일인줄 알았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저기 비파 키즈가 또 자라고 있다.
비파의 계절이 갔구나 싶었는데 겨우내 기특하다고 늘 칭찬했던 귤나무에 초록 구술이 또 주렁주렁 열려 있는 게 나를 미소 짓게 했다. 어떻게 저렇게 앙상한 가지에서 매년 그렇게 새콤달콤한 열매를 1~200개씩 솟아나오게 하는지 정말 신통방통하다.
겨울이 되어 농부처럼 귤을 따서 유기농이라고 생색내며 이웃과 나눠먹어 겠다. 잠시 고된 노동으로 우리집 문 앞 햇볕 좋은 곳에서 쉬는 아줌마 아저씨들에게도 인심 쓸 생각을 하니 벌써 흐뭇해 진다. 이렇게 나는 장래 희망인 농부의 마음을 미리 느껴본다.
튤립(lkse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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