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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 계수나무꽃(桂花)

[2018-11-09, 06:12:59] 상하이저널

가을이 좋다. 높고 맑은 하늘이 좋기도 하고, 한여름이 물러난 선선한 공기가 좋기도 하고, 오색의 나뭇잎이 경이로워 좋기도 하고 바닥에 쌓인 바스락거리는 낙엽이 좋기도 하고,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모양새가 그윽하여 좋다. 강아지를 키우며 매일 아침 산책을 하다 보니 상해의 가을이 이리 긴 줄 처음 알았고 가을을 통째로 마시고 있는 착각이 든다.


멀리서 한 노인이 나뭇가지를 부여 잡고 무언가를 열심히 훑으신다. 궁금해 다가가 보니 열매가 아닌 쌀알만한 꽃을 열심히 따고 계신다. 이렇게 가을의 한복판에서 계수나무꽃, 계화를 만났다. 둘러보니 10월의 한복판 우리 아파트 단지 곳곳은 과일향 비슷한 꽃향기로 감싸였다. 산책을 하며 은은하고 맡기 좋은 이 향의 정체가 너무도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계수나무꽃이다.


여기저기서 계화를 모으는 분들을 만나다 보니 나도 덩달아 향에 취해 강아지를 산책할 때마다 계화를 따고 있었다. 나즈막한 계수나무에 꽃이 잔뜩 달려서 왠 횡재인가 싶어 부지런히 따다가 꽃잎차를 만들었는데 왠걸 향기가 오묘하다. 계수나무의 년수에 따라 꽃의 색깔과 향에 차이가 많이 났다. 모두가 외면한 향이 옅은 계화를 붙들고 있었다. 보아하니 연륜이 있으신 분들은 향이 진한 꽃잎이 달린 나무를 잘 알고 따고 있었다. 하루, 이틀 따다 보니 향이 진한 꽃을 감별할 수도 있게 되었다. 주인이 꽃향에 취해 꽃을 따다 보니 아래에 있던 강아지의 온 몸에도 온통 계수나무꽃이 피었다. 내 머리에도, 내 옷에도 온통 계수나무꽃이다.


이렇게 단지 안에 계수나무가 많았던가? 여기저기 향이 진한 계화가 모두가 나눠 따 차를 만들어도 좋을 만큼 지천이다. 내 인생 처음 계화향에 취한 가을이다. 계화를 채취하는 첫 해니만큼 욕심을 버리고 겨울 어느 자락에서 가을을 보고플 때 몇 잔 마실 만큼, 딱 고만큼만 즐겁게 계화를 모았다. 가을 햇볕에 한나절 말리니 이미 말린 꽃이다. 내가 딴 이가 아니라면 모르고 그냥 버렸을 모양새다. 아이들은 엄마가 향주머니를 만드는 줄 알았나 보다. 좋은 향을 좋아하는 큰 딸은 향주머니를 기대하다가 차를 만든다는 말에 실망한 눈치다. 하지만 아이들의 가을에도 엄마의 모습에서 집안으로 들여 온 계수나무꽃에서 가을 한복판에서 이미 계화를 만났다.


10월이 지나가니 계화는 흔적도 없다. 정말 찰나처럼 흐드러지게 노란 쌀알만한 꽃이 피고 지더니 사라졌다. 향에 취해 계수나무 아래 한참 머물던 시간들이 꿈같다. 꽃이 진 계수나무는 무엇이 계수나무인지 구분도 못하겠다. 꽃을 따던 순간의 기억들이 추억이 되어 온 단지 안에 숨어 있는 계수나무를 숨바꼭질하듯 찾는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많이도 불렀던 노래인데 나이 50에 계수나무의 정체를 알았다.


아침 산책 후 집에 돌아와 보니 계화는 꿈이 아니었다. 투명한 병에 연한 가을 계화향을 품은 말린 꽃잎이 담겨 있다. 가을이 그리울 때, 다음 가을이 올 때까지 정말 가끔 가을을 마실 수도 있겠다.  2018년 향기 있는 가을을 만났다.

 

Renny(rennyh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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