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리며
사무엘 베케트 | 민음사 | 2012.2.20
이 작품은 희곡이다. 사실 희곡을 책으로 접한 것은 처음이었다. 국어 시간에 작품의 일부분만 배웠던 기억이 있을 뿐인데, 형식도 낯설고 도무지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뒤 대충 줄거리 요약하고 책 앞뒤에 있는 글들 짜깁기해서 리포트로 제출했던 책이다.
인연이었는지 민음사에서 출판한 책을 사서 한 번 더, 그리고 서른쯤 되어 책장을 정리하다가 또 한 번 읽었다. 그리고 상하이에 와서 친한 언니에게 빌려와서 그렇게 또 읽었다. 어릴 때 느낄 수 없었던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공허함과 슬픈 희망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해되고 느껴졌다. 지금은 나에게 아주 소중한 책 중에 한 권이 됐고 앞으로도 몇 번 더 반복해서 읽을 것 같다.
정작 주인공인 고도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바보 같은 블라디미르만이 변함없이 그를 기다린다. 가끔 고도가 올 거란 소식을 전해주고 가버리는 소년만 등장해도 설레며 또 기다린다. 1막이나 2막이나 줄거리 없기는 마찬가지로 말장난 같기도 한 연계성 없는 대화가 이어진다.
그렇게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오지 않는 고도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내용 요약만으로는 참 재미없다. 결국엔 무의미한 일상을 못 견디고 그 둘도 자살을 선택하지만 죽지도 못하고, 다음엔 더 질긴 줄을 가져와서 죽자고 하며 막이 내린다. 자살에 실패해서 그런지 비극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고도는 우리가 대부분 떠올리게 되는 희망이나 뭐 그런 것들이 맞는 것 같다. 인간이기에 약해지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한다. 소년이 전한다. 고도씨는 오늘 밤에는 못 오지만 내일은 꼭 온다 했다고.
우리 모두 나만의 고도를 기다리며, 가끔 삶이 너무 고단할 때 한 번 읽어본다면 슬픈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진한 울림으로 가슴에 남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고도는 온다고 약속했으니, 나도 이루어지든 말든 일단 꿈은 꾸어보련다.
신안미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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