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쓴 글이란 무엇인가?
아이들과 책 읽고 토론하고 글을 써온 지 20년 가까이 되다 보니,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쓸 수 있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뒤집어 물으면 어떤 글을 읽고 나서 잘 썼다고 느끼는가? 나로 말하자면 우선 어떤 형태로든 재미를 주는 글. 내가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는 글, 참신한 시각이나 남들보다 깊이 있는 해석을 보여주는 글. 무엇보다 감동을 주는 글. 어떤 가치에 대해 일깨워주는 글이 잘 쓴 글이라 답하겠다.
잘 쓴 글은 이와 같은 다양한 미덕 중 적어도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잘 쓴 글에 대한 하나의 정답은 없다. 그러나 굳이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잘 쓴 글’이란 ‘글을 쓰는 목적에 부합하는 글’이다. 그러자면 그 목적에 알맞은 문제의식이나 짜임새가 필요할 것이고 그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논리와 표현이 따라와야 할 것이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
그런데 막상 마음이 가는 글은 따로 있다. 매끈하게 잘 쓴 글보다는 거칠고 소박해도 자기답게 쓴 글에 자꾸 시선이 머문다. 그런 글들의 공통점은 글쓴이 자신의 삶이, 마음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오덕 선생은 “글쓰기는 자기를 나타내는 가장 높은 수단”이라고 정의했다.
글이란 게 문법이나 어휘만 안다고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글감과 주제만 있다고 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내 눈으로 세상을 보고, 내 머리로 생각하고, 내 목소리로 세상에 발언하는 일이다. 내가 맞닥뜨린 세상에 대해 내 관점으로 해석해서, 내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며,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일이다. 그렇게 글쓰기는 내 삶을 옹호하고 내 삶을 가꾸는 일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치유의 힘이 있다. <대통령의 글쓰기>의 저자인 강원국 씨도 “글을 잘 쓰려고 하기 보다는 자기만의 글을 쓰는 게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여행
최근 8주 동안 엄마들 대상의 글쓰기 특강을 진행했다. 우리 엄마들도 자신의 삶에 대해 돌아보면서 자신만의 서사를 찾고 표현할 기회를 만들고 싶었다. 강의 첫날 글쓰기 강좌에 오게 된 이유를 묻자 다들 이구동성으로 ‘나에 대해 알고 싶고, 성찰하고 싶고, 표현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나는 할 일 다 했으니 잘 죽고 싶다”는 가장 연배가 많은 분의 대답이었다.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 글쓰기는 돌이켜서(반) 성찰함으로써(성) 잘 살고 싶게 만든다. 이게 글쓰기의 힘이다.
처음엔 뭘 써야 할지 막막해하던 수강생들이 두 번의 모임 만에 봇물 터지듯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유년에서부터 청춘을 거쳐 결혼과 육아 등 생애주기를 주제로 글을 쓰면서 너무나 익숙하고 공통된 구조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우리는 저마다의 이유로 상처받으며 자랐고,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에 아팠고, 행복했다. 우리는 모두 울고 웃으며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마음을 깊이 나누는 벗이요 동지가 되어 있었다. 불과 두 달 만에. 이것이 글쓰기의 또 다른 힘이다.
“글쓰기 수업 내내 모든 수업이 좋았습니다만 제게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마지막 수업이 아주 오래도록 남을 것 같아요. 내 죽음에 관한 그 느낌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선택의 순간마다 망설이지 말고 해보자 하는 다짐을 하게 합니다." -한 참가자의 후기 중에서
김건영(thinkingnfuture@gmail.com)
8주간의 수업을 마친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여행>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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