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뀔 때마다 위챗 반찬 공구방에도 제철 메뉴들이 올라온다. 여름을 알리는 몇 가지 메뉴 중 '콩물'은 나에게는 좀 특별하다. 여전히 콩밥은 싫고 콩국수도 안 먹지만 콩물에는 눈길이 간다. 몇 년 전에 한 번 주문해 먹어본 것이 생각보다 진하고 고소해서 가끔 시켜서, 또 가끔 한 잔씩 마신다.
콩물은 외할머니께서 좋아하셨고 즐겨 드셨던 것이다. 외할머니는 늦여름과 초가을의 날씨가 공존하던 즈음, 올해로 딱 20년 전에 돌아가셨다. 나에게 차고 넘치는사랑과 지지를 주셨던 분, 늘 나를 보듬고 쓰다듬으며 "아이고 내 강아지~", "아이고 내 사람아~" 하시며 예뻐 어쩔 줄 몰라하셨다. 국민학교 입학 선물로 외할머니께서 사주신 천재백과사전은 내 인생의 첫 책 선물로 기억에 남아있다. 하드커버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읽고 또 읽었던 책이다. 지금도 종종 외할머니 생각을 하고 그리워하면서 가슴 한 켠이 찡해지기도 한다.
바닷가 남쪽 도시에 사시던 외할머니께서 서울 딸집에 오시는 경우는 대부분 한 가지 이유였다. 우리집에서 대규모 손님을 치를 때마다 화사한 멋쟁이 치맛자락을 휘날리시며 엄마의 구원자로 나타나셨다. 아이스박스 가득 새벽 수산시장에서 사 오신 아직도 팔딱거리는 싱싱한 생선들과 해산물을 비롯해서 각종 반찬, 김치 등을 바리바리 싸 들고서. 요리 솜씨 좋은 외할머니는 아빠 지인들에게도 유명인사셨다.
우리집에 오시면 외할머니께서는 근처 시장에 가서 장을 또 보신다. 특히 여름이면 우묵과 콩물을 사 오셨다. 우묵과 오이를 채 썰어 콩물에 넣고 얼음까지 띄어서 참 맛있게도 드셨다. 우뭇가사리 콩국은 당신을 위한 음식이었다. 어려서부터 콩을 싫어하는 나는 그 콩국은 입에 대지도 않고 그저 할머니 옆에 앉아 드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자신의 식성과 식욕을 드러내고, 그것을 위해 장을 보는 외할머니의 모습은 좀 신기했다고나 할까. 그야말로 내 눈에는 신여성이었다. 내가 보고 생각해 온 엄마는 좋아하던 짜장면도 싫다고 말하게 되는 그런 존재였으니.
외할머니 역시 자식들과 남편을 위해 인생의 대부분을 희생하며 사셨다. 그럼에도 자신의 욕구에도 충실하셨고 열정이 있는 분이셨다. 늘 멋지게 옷을 차려입으셨고, 병원에서 돌아가시는 순간에도 가장 좋아하셨던 빨간색 루비 반지를 끼고 계셨다.
콩물은 나에게 외할머니이고, '당당한 표현'의 상징이기도 하다. 다른 가족들의 외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맛있게 후루룩 드시던 모습이 여름만 되면 콩물의 고소함만큼 진하게 떠오른다. '이게 그렇게 맛있었나' 생각하며 한 모금 한 모금 마시다 보면 어느새 외할머니와의 추억이 나를 보들보들 감싸고 있다. 입맛도 의욕도 없는 헛헛한 날에, 낼모레 쉰을 앞두고서도 응석 부리고 싶은 날에 콩물 한 잔이 떠오르는 이유다.
레몬버베나(littlepo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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