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채 수그러들지 않은 초가을 주말 2박 3일 짧은 여행을 떠났다. 시트립 같은 여행 사이트를 뒤지다가 상해에서 적당한 거리에 있고, 산이나 계곡 같은 자연이 가까이에 있으며, 가성비 좋은 숙소가 원하는 날짜에 비어 있다면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예약한다, 그리고 떠난다.
이런 게릴라 식 여행은 나에게 끈적한 더위에 몸이 축축 처지는 여름날 이가 시리도록 오도독 씹은 얼음과 함께 한 모금씩 넘기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것이었다. 특별히 할 것도, 갈 곳도, 먹을 것도 특별하지 않아 일상을 닮아 있고 조금 싱겁지만 느낌만은 탄산음료 같은 그런 여행이다.
이번 목적지는 저장성의 후저우시(湖州市)이다. 정확히 말하면 후저우시에 속한 타이후(太湖)지역이다. 사람들은 이 지역을 타이후의 남쪽이라는 뜻으로 난타이후(南太湖)라고 부른다. 아주 오래 전 타이후의 지형은 원래 바다와 면한 만이었는데 어떤 원인 때문인지 바다와 단절된 후 긴 담수화의 과정을 거쳐 지금의 거대 담수호가 되었다고 한다. 타이후는 각각 북쪽으로 장쑤성 우시(无锡), 동쪽으로 쑤저우(苏州), 서쪽으로 이싱(宜兴), 남쪽으로 저장성 후저우 등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호수 3분의 2에 달하는 면적이 쑤저우의 행정구역 안에 속해 있단다.
짐을 두고 직원이 알려준 대로 숙소 옆길로 난 두 개의 철문을 지나자 시야가 탁 트인다. 자전거 도로와 광장 건너편 저 멀리 오후 햇살을 느긋하게 품고 있는 호수가 보인다. 땀에 젖어 얼굴에 살짝 달라붙었던 머리카락이 바람에 세차게 나부낀다. 호수 바람은 육지의 그것과 바다의 그것과도 다르구나. 타이후를 즐기려는 사람들은 모두 쑤저우로 가기라도 한 건지 주말인데도 이 곳은 사람 구경하기 어려울 만큼 한적하다.
상하이에서 두 시간 남짓 달려왔을 뿐인데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같은 호수가 하루의 끝자락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니! 순간 내가 참 좋은 곳에 살고 있구나 하는 소소한 감동이 피어 오른다.
호수 쪽으로 더 가까이 가봤다. 물살이 바람에 춤을 춘다. 바다처럼 출렁이며 파도 친다.
난간에 가만히 기대서 있자니 바람이 쉴 새 없이 내 가슴으로 들어온다. 한구석에 쌓여있던 찌꺼기 들을 휘몰고 되돌아 나간다. 시원하다. 내가 바람인지 바람이 나인지 헷갈린다. 온 몸의 혈관이 산소로만 채워지는 느낌이다. 특별히 할 것도, 볼 것도, 갈 곳도 없는 여행이니 물을 보고 바람을 맞으며 그저 천천히 걸었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잠시 쉬었다 온천에 갔다. 숙소에서 1박 기준 1인 1장의 온천 사용권을 준다. 온천은 여기를 여행지로 선택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작년 모간산(莫干山)에 갔다가 저장성 지역에도 온천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여기는 어떤지 궁금했다. 화산섬도 아닌 지역의 온천이 뭐 그렇겠지, 살짝 얕잡아 봤다가 깜짝 놀랐다. 규모도 작지 않았고 시설이며 관리도 잘 되고 있었는데, 무엇보다 무려 41도와 42도를 오르내리는 작은 고온탕이 하나 있어서 좋았다. 뜨거운 물을 꺼려하는 이 곳 사람들 덕분에 독탕처럼 이용했다. 어릴 적 엄마 손에 끌려 다니던 대중목욕탕에서부터 단련된 뜨거운 물 속 버티기 실력을 충분히 살려 아주 오래도록. 물에 담근지 몇 분만에 뻣뻣한 관절은 한결 부드러워지고 피부도 보들보들해졌다. 호수를 바라보며 걷던 낮과는 또 다른 행복감이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명소들 못지 않은 기후, 지형, 자연 그리고 유적이 거짓말 조금 보태 중국 안에도 다 있다. 설산의 장엄함, 구채구의 물색, 내몽고 초원과 밤하늘의 별, 하이난도의 바다, 리장 고성, 티벳 등등. 기회 있을 때면 나는 중국 사람들에게 묻는다. 당신들 나라에 세계 명소에 결코 뒤지지 않을 아름다운 곳이 많은데 왜 굳이 해외로 떠나는가, 국내 여행은 다 해 봤는가. 그들은 고개를 저으며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그 웃음의 의미를 알 듯도 한데 그럴 때마다 문득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건 부러움인가 아님 질투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같이 웃곤 한다.
하이디(everydaynew@hanmail.net)
<아줌마 이야기> 코너가 올해부터 <허스토리 in 상하이>로 바뀌었습니다. 다섯 명의 필진들이 상하이 살면서 느끼는 희로애락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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