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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 미메시스 | 2018년 9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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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주어진, 혹은 나에게 주어진 몫은 무엇일까.
그리고 과연 그 몫을 다하고 있는 걸까.
최은영 작가는 언제나 따스한 시선으로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들을 비추어 보고, 사회에서 흔히 ‘소수’라 칭해지는 이들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그려 나가며 위로를 전해준다. 그녀의 단편 소설<몫>은 기존의 소설들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여전히 특유의 편안한 문체로 담담하게 소소한 일상을 전하지만, 그 아래에 무언가 날카로운 것이 있다.
<몫>은 글쓰기를 사랑했던 해진, 정윤, 희영, 세 여자의 이야기이다. 대학 시절 편집부에서 만나 결국은 모두 다른 길을 걷게 된,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언가 특별한 세 사람. 선배였던 정윤은 꿈을 포기하고 결혼을 택하는 길을, 글쓰기에 자신이 없던 주인공 해진은 기자의 길을, 대학 시절 해진의 치기 어린 질투를 살만큼 글쓰기에 특출났던 희영은 결국 기지촌 활동가로서의 삶을 택한다.
희영을 통해 이번 소설에서 조명되는 건 기지촌 여성들이다. 작가 역시 기지촌 여성 운동에 관한 글을 읽다가 알게 된 그들의 고립감이 이 소설을 시작하게끔 하였다고 한다. 여성운동이지만 인정받지 못했던, 누구보다 외로웠을 희영과 그들 말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생소하고 거부감마저 들 수 있는 주제들을 작가는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대학교 편집부 사람들의 이야기, 해진과 희영의 우정, 정윤과 희영의 사랑이 펼쳐지는 잔잔한 일상 속, 교지에 실을 내용을 정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때가 여자대학교에서의 집단폭력이 눈감아지고, 가정폭력을 다루는 법이 없던, 여성 인권을 위해 용기 낸 목소리들이 너무나도 쉽게 묵살당하던 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글쓰기를 그만두고 활동가의 삶을 택했냐는 질문에 소설 속 희영은 말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 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으로 사는 사람들” (p.54)
희영의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의 몫,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나누어 가지는 각자의 책임들은 무엇이며 그것들을 지켜나가고 있는 걸까. 희영의 말은 옳다. 그저 목소리를 내고, 의견을 내는 것만으로도 바뀌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부정의를 비판만 한다고 사회가 쉽게 바뀔 리 없다. 그것만이 내 몫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몫이 그리 작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생략된 부분이 중요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로 세 사람이 함께한 시간 이후의 삶에 대한 설명은 최대한 생략했다고 한다. 그리고 생략된 이야기들은 많은 생각을 남긴다.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나서, 정말로 글을 써야 하는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쓸 줄 모르는 당신만 남아 글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던 날들이 있었다. 그 나날이 길었다.”
소설 중 해진이 남긴 말을 읽으며 작가가 자기 자신을 투영한 부분은 아닐까 생각했다.
또 해진은 말한다.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한 번 읽고 나면 읽기 전의 자신으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글을.”
그리고 해진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쓰고 싶었던 글을 쓰고 있다고.
도예림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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