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의 계절감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보다 많이 습하긴 하지만, 이곳에서 10년을 넘게 살아오다 보니 이제는 한국에서의 그 건조함을 견디지 못할 만큼 이곳의 계절이 완전히 적응해버렸다. 하지만, 올해 상하이의 가을은 그 어느 때보다 건조하고 높은 기온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워밍(global warming)으로 인한 이상기후로 이러한 경향은 매년 더 심해질 것이라 예상되며 이제는 이렇게 조금씩 더 건조한 가을을 맞이하게 될 것 같다. 동시에 아름다운 가을이 더 짧아질 것이라고 한다.
한국의 가을은 단풍으로 대표된다. 그리고, 상하이의 가을은 꾸이화(桂花, 계화)로 대표된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꾸이화의 그 향긋한 냄새가 시작하는 날로부터 가을로 인식된다. 온 동네에 방향제를 뿌려놓은 듯한 그 향은 시각이 아닌 후각으로부터 가을을 감각하게 하고 날이 갈수록 그 향이 더 깊어지면서 가을의 한가운데서 충분히 이 계절을 만끽할 수 있게 한다.
상하이에서의 처음 몇 해의 가을 동안에는 알록달록한 단풍을 찾을 수 없어 아쉬움이 많았다. 등산을 즐기는 편도, 자연환경에 흥미가 있는 타입도 아니었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 매 계절마다의 나만의 시그니처를 하나씩 정해두고 있었으니, 가을의 그것이 바로 빨간 단풍잎이었다. 하지만, 상하이에서는 그 빨간 단풍을 여름에도 뜬금없이 만날 수 있었고, 어디에도 빨간 단풍잎이 군집해 있는 곳을 찾지 못했다. 상하이에서의 몇 번의 가을을 지난 후에야 이 곳은 빨간 단풍이 아닌 노란 은행잎 그리고 그 전에 노란 꾸이화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늘 그렇든 인간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함보다는 갖지 못한 것, 특히 갖고 있었다가 잃은 것에 대한 집착과 아쉬움이 더 큰 법. 가을인데 어디에서도 울긋불긋한 단풍을 만날 수 없다는 아쉬움에 사무쳐 집에 가고 싶다, 한국의 가을이 너무나도 그립다고 생각하던 중, 향긋한 냄새로 나를 위로해 주던 것이 바로 꾸이화이다. 단풍처럼 눈에 확 띄지는 않지만 은은하게 풍기는 그 향기로 마음을 안정시켜준다.
한편, 나에게 가을을 대표하는 음식은 단연 “감”과 “밤”이다. 추석 성묘길에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는 밤 껍질을 발로 눌러 까는 재미가 기억 속에 깊이 새겨져 있고, 또 홍시가 익어가면 소쿠리 한 가득 홍시를 가져오시던 외할머니의 환한 웃음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런 좋은 기억 때문일까 가을이 되면 유독 더 살이 오동통하게 오르게 된다. 이제는 밤 따러 갈 일은 없지만 국경절 연휴를 고향에서 지내고 온 도우미 아주머니께서 가져다주시는 단밤이 이 가을 나를 살찌운다. 그리고, 올 해 처음만난 미니홍시는 하루에 10개라도 먹을 수 있는 달고 보드라운 맛이다. 매일 허마(盒马)에서 산 홍시를 씻어 물렁한 것과 딱딱한 것을 나눠 놓는 것이 이 가을날의 가장 큰 즐거움이 되었다.
유독 더운 가을이 지나며 왜 이리 올해는 덥냐고 탓하지 말아야겠다. 한 달만 지나면 곧 겨울은 찾아올 것이고, 그 때는 꾸이화 향기와 달콤한 미니홍시가 그리워질 테니 말이다.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보다는 갖은 것에 대한 감사로 하루하루가 달콤해지면 좋겠다.
에리제를 위하여(khe30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