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상하이에서 계절의 여왕은 단연코 사월이 아닌가 싶다. 오월이면 벌써 한여름의 무더위가 걱정될 정도로 푹푹 찌는 날씨가 아열대 기후임을 실감하게 만든다. 중국 최초의 여성 건축학자이며 시인인 린후이인(林徽因)도 “너는 인간 세상의 사월(你是人间四月天)”이라는 유명한 시로 갓 태어난 아들을 아름다운 4월에 비겼다.
이런 화사한 봄날이 언제였던가. 감미롭고 상큼한 사월이 이렇게 늘 새롭게 느껴지는데, 사실 상하이살이 만 20년이다.
봄기운 무르녹는 홍췐루 거리를 누비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눈에 띄게 얇아졌다. 촬영기사를 대동하고 순백의 드레스 차림으로 거리 곳곳에서 포즈를 취하는 인플루언서 같은 아가씨들도 간간이 보였다. 주말이라 그런지 인파가 몰리는 한인 마트 앞 벤치에 앉아 잠시 쉬는데 어느 노랫말처럼 정말로 눈 부신 햇살에 눈물이 났지만, 그래도 마냥 좋았다. 한국인보다 중국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아 보이는 주말의 한인타운 모습이다.
마트를 들렀다 나온 손님들은 다들 바나나우유나 과자를 한두 개씩 집어 들고 있었는데 여기 교민들처럼 큰 봉투를 가득 채우는 생필품 구매는 아닌듯하고 한국서 관광하듯 상품도 체험 위주로 맛보는 식이었다. 아이스크림 냉동고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며 열심히 고르고 있는 한국 주부도 보였다. 10원 한 장으로 살 수 있는 한국 식품이 꽤 되었다. 이젠 모바일 결제이긴 하지만 꽤 저렴한 간식들을 많이 사고 싶도록 상품들이 알록달록 예뻤다. 얇아진 지갑에도 상하이살이 초반보다 체감하는 한국 상품 가격은 내렸음을 느꼈다.
근처에는 규모 있는 한인 마트만 세 곳이나 되었는데 편의점이나 중국 슈퍼도 곳곳에 있었다. 가게마다 종업원들이 진열 상품이 동나지 않도록 채워 넣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트 바로 옆은 유명한 중국 빵 가게인데 한인 마트에도 빵이 있다. 이렇게 많은 가게에서 비슷한 상품 구성으로 각자 손님을 맞으며, 또 서로 손님을 공유하는 모습조차 푸근하고 넉넉해 보여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두루두루 더불어 사는 것이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붐비는 인파 속 앳된 얼굴들이 생동하고 경쾌하다. 이런 게 진정 봄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는 세상 곳곳에 약동하는 봄기운만 차고 넘쳤으면 좋으련만 이런 아름다운 상하이의 사월은 한국인에게는 잔인한 그리움의 사월이기도 하다. 허망하게 스러져간 젊음들을 상기시키는 침통한 사월이다.
그리움은 만남의 반가움으로 연결이 되어야 하는데 그 그리움이 허공 속의 메아리로만 돌아올 때 뼛속 아픔과 슬픔은 더욱 사무칠 수밖에 없다. 기쁨과 희망은 크지 않아도 좋으니 부디 그렇게 절망스러운 세상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소이 mschina05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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