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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 다산책방 | 2023년 7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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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KEEPING AN EYE OPEN
미술에 관심을 가지며 전시회를 다닌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생각해보니 고등학교 미술 시간이 떠오른다. 무엇이든 자유롭게 그려 보라던 수업 시간, 막막함에 동그라미를 막 겹쳐 그리며 일종의 낙서 같은 그림을 그렸는데, 그것도 미술이지’ 하셨던 선생님이 떠오른다. 전시회를 다녀와 전시 감상문을 제출하는 것은 방학 숙제였고 숙제를 하기 위해 몇번의 전시회를 다닌 것이 미술 관람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 위아래로 살며 인연을 맺은 이웃의 전시회를 관람하며 인사동 갤러리들을 알게 되고, 전시회가 열리면 아이들을 데리고 관람했던 기억도 난다.
상하이에 오게 되어 마땅히 갈 곳이 없을 때 박물관과 미술관은 놀이터가 되어 주었다. 미술이나 그림에 특별히 깊이 안다거나 그런 건 아니다. 그림을 보면 형태와 색의 아름다움과 창조성, 독특함에 매혹되고 그림을 전시한 멋진 건물들에 감탄하고, 그렇게 보고 오면 생활에 활력이 생긴다.
책 <아주 사적인 미술 산책>은 제목에서 끌렸다. 미술과 산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두 단어가 주는 끌림, 게다가 ‘줄리언 반스’가 쓴 책이라니… 화가들, 그림들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그가 이야기를 풀어냈을지 몹시 궁금했다. (표지 그림, 팡뎅 라투르의 <식탁 모서리>중 랭보의 모습)
반스는 옥스퍼드에서 프랑스어와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법학을 공부하고 변호사 획득, 저널리스트, 비평가, 편집자 등 여러 일을 거치며 다수의 소설과 수필을 썼고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이 책은 이런 경험과 경력을 가진 반스가 1989년부터 2013년에 걸쳐 여려 유명 잡지에 기고한 미술 에세이를 모아 엮은 책이다.
서양 문화를 경험하고 정점에 오른 반스의 감수성과 시각으로 펼쳐내었으니, 나로서는 쉽지 않은 책이었다. 그림이나 화가에 관한 일반적 소개글과는 달라 당황스러웠고 시간을 들여 천천히 읽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소개된 화가는 제리코, 들라크루아, 쿠르베, 마네, 팡탱 라투르, 세잔, 드가, 르동, 보나르, 뷔야르, 발로통, 브라크, 마그리트, 올든버그, 론 뮤익과 폴 리셰, 프로이트, 호지킨이다. 낭만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나비파, 큐비즘을 거쳐 현대 미술의 화가들까지 망라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팡뎅 라투르, 르동, 올든버그, 폴 리셰는 이 책을 통해 새로 알게 된 화가들이다.
각 챕터의 글들은 화가들마다, 화가의 특성에 따라 조금씩 다른 형식과 문체를 취한다. 재미있게 읽었던 편은 <제리코-재난을 미술로>이다. 1816년 메두사호가 침몰된 후 구조된 생존자들을 그린 ‘메두사호의 뗏목’, 반스는 제리코가 그 사건을 어떤 과정을 거쳐 그림으로 완성시켰는지를 작가적 상상력과 사실을 조합하여 한편의 사건 르포처럼 기술하고 있다. 한 장면에 무엇을 담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축소하며, 어떻게 인물을 배치할지 고민하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뗏목을 직접 제작했다는 준비 과정과 생존자들의 뒷이야기까지 이어지니 무척 흥미로웠다.
마지막 소개 화가인 <호지킨(1943-2017)> 편에서는 색에 대해 무척 까다로워, 반스의 눈엔 같은 검정으로 보였지만 호지킨의 눈엔 미묘하게 다른 검정으로 보인 일화를 소개하고, 동시대를 같이 살며 함께 했던 일들을 단상 형식으로 썼다. 플로베르의 말을 하도 많이 인용해서 플로베르의 책을 읽고 싶게 만들기도 한 챕터였다.
또 특징적인 것은 각 화가들마다 따로 소제목이 있다. 그래서 그 소제목이 의미하는 바에 주목하며 읽는 묘미도 있다. <마네-블랙, 화이트>편에서 마네가 새로 시도한 그림 화법을 소개하고 마네 블랙과 마네 화이트에 대해 이야기 한다. 예를 들어 그림 ‘올랭피아’에서 익히 알고 있는 이 그림의 파장과 영향력에 대해서도 언급하지만, 색 화이트에 주목하여 보게 한다. 살, 침대보, 이부자리, 꽃, 꽃을 둘러싼 종이 사이의 흰색의 호응이라든지, 그림 ‘독서’에서의 흰옷과 흰 소파 덮개, 레이스 커튼의 흰색 대비 등은 흰색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차리게 한다.
제목처럼 반스의 아주 사적인 감상문이기에 <브라크-회화의 심장부> 편에서 피카소에 대한 은근한 비판도 만나게 된다. 타고난 천재 같기만 하던 피카소는 차분하고 도덕적인 친구 브라크를 평생 질투하였다고 하며 “피카소의 ‘브라크 시기’는 피카소의 화가 인생에서 가장 농축적이고 결실이 풍부한 시기였다”는 알렉스 단체브의 말을 인용, 브라크의 위상을 부각시킨다. West bund museum의 the voice of things 전시회에서 마침 브라크와 피카소의 그 당시 그림이 몇 점 전시되었는데 그 그림들을 보니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음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이밖에 화가들의 사소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낭만주의의 대가 들라쿠루아는 고루하고 성실한 금욕주의자였고, 사실주의의 대가 쿠르베는 병적인 자기중심주의를 지녔다는 것), 그것이 그려지던 순간이 장면이 되어 지나가게 하였다. (마네는 모델에게 생동감 있게 움직이라고 요구했지만, 세잔은 사과처럼 가만히 있으라고 하다가 화가 나면 붓을 내팽개치고 화실을 뛰쳐나갔다) .
<뷔야르- 에두아르로 불려주세요> 편에서는 한 명의 관람객인 내가 살짝 뜨끔했던 문장이 있다.
“우리는 각자의 지식과 기질, 소화기관의 상태, 당장의 유행에 따라 감탄하기도 하고 경멸하기도 하면서, 이 그림 저 그림을 톱10 리스트로 꼽으면서, 이 화가 저 화가의 사생활에 구제불능의 호기심을 보이면서, 유명한 미술관들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는 관람객들, 그러건 말건 아랑곳없이 미술은 당당하고 무정하게 우리를 따돌리고 계속 전진한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며 관련 그림과 언급된 비평가, 인물들의 소개글을 찾아 읽어야 이해할 수 있어 피로도가 있었는데 가끔씩 만나는 반스식 위트 있는 문장은 그 와중에 웃음을 터트리게 했다. “집에 걸려 있었던 전혀 에로틱하게 느껴지지 않는 여성누드 유화를 보며 “예술의 역할은 그런 것인가 싶었다. 그러니까 엄숙미로 삶의 흥분을 제거하는 것”이라든지, <팡뎅 라투르의 뒤부르 가족>을 소개하면서 “이것은 미술과 결혼의 역사상 처가를 묘사한 것 중 가장 우울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이 아닌가 싶다.” 등.
8년 전, 불가피하게 하게 된 일로 힘들고 지쳤을 때 RAM 미술관을 찾았었다. 4층 천장에 크고 작은 물방울모양의 풍선들이 매달려 있었다. 그 설치 미술품들을 보자 마음속 무거움들이 풍선으로 옮겨갔다. 그냥 보고만 있었는데 마음이 어루만져진 기분이랄까… 그날 처음 느낀 미술의 위로였다. (the loop of deep waters 8 / tears of a tree by Mark bradford)
미술이란, 예술이란 무엇일까? 나에겐 위로였고 삶의 활력이듯, 반스는” 미술은 단순히 흥분을, 삶의 전율을 포착해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미술은 가끔 더 큰 기능을 한다 미술은 바로 그 <전율>이다.”라고 했는데 깊이 공감한다. 반스의 미술 산책길은 밀도가 있어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가 펼쳐놓은 다채로운 산책길을 친구들과 나누며 완주하여 뿌듯하다.
양해자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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