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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 상하이 244] 돌봄과 작업

[2024-07-04, 14:50:36] 상하이저널
정서경 외 | 돌고래 | 2022년 12월
정서경 외 | 돌고래 | 2022년 12월
나를 잃지 않고 엄마가 되려는 여자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글을 쓴 지 12년이 넘었다. 그 덕분에 에세이 몇 권을 출간하고 작가가 되었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가장 많은 질문을 받는 것 역시 ‘새벽 3시 기상’에 관한 것이다. 원래 아침형 인간이 아니었던 내가 새벽 기상을 하게 된 데는 대단한 이유가 있던 건 아니었다. 당시 두세 살이던 두 아들을 키우느라 낮에는 도무지 시간을 낼 수 없었기에, 애들보다 두 시간만 먼저 일어나자고 결심했던 일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토니 모리슨도 그랬다. 처음 글을 쓰던 시절 두 아들이 어렸기 때문에 방해받지 않고 글을 쓰려면 새벽 4시에 쓸 수밖에 없었다. 이 습관이 후일 혼자 살게 되었을 때도 지속되었고, 그녀는 새벽 해뜨기 전이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했다.

공격 대상이 나타났을 때 인간은 ‘투쟁’ 또는 ‘도피’ 반응을 나타낸다고 배웠지만, 그건 남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반응이다. 여자들은 도망가지도 싸우지도 않는다. 아이와 환자, 노인에게 주의를 기울이며 그 자리를 쭉 지켜 나간다. 어떤 상황에서도 ‘돌봄’을 우선시한다.

이 책은 ‘돌봄’ 때문에 ‘작업’을 포기하거나 놓았던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아이를 돌보는 일과 내 것을 만드는 일 사이에서 시도하고 실패하고 그럼에도 성장하는 11명의 여자들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시나리오 작가, 소설가, 번역가, 과학기술학 연구자, 아티스트, 미술사 연구자, 인터뷰어, 입양 지원 실천가, 편집자, 일러스트레이트 등 작업하는 분야는 모두 다르지만, 돌봄과 작업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그들이 하는 고민은 비슷하다.

돌봄과 작업은 무관해 보이지만, 둘 다 우리 삶에서 중요하고 또 창조적인 영역이라는 점에서 닮았다.

‘글 쓰는 엄마’로서 나는 시시각각 분열된다. 흩어지는 가루와 파편을 모아 점묘화를 그리듯 글을 쓴다. 한 점 한 점 찍어 그리는 점묘화는 일반 그림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대신 좀 더 밀도 높은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 물감을 팔레트에서 섞지 않고 화폭에 직접 순수한 색의 점을 하나하나 찍어나가다 보면, 다른 화가들이 보지 못하는 아주 작은 부분까지 섬세하게 볼 수 있다. 때로는 붓 대신 면봉이나 손가락으로 점을 찍어야 할 때도 있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이 책은 누군가가 혼자 만들어낸 책이 아니라, 11명이 함께 작업해 출간한 책이다. 혼자 점을 찍는 일이 힘겨울 때는 함께 모여도 좋을 것 같다. 내 곁에 누군가가 있다고 생각하면 든든하고, 전체가 아니라 내가 맡은 구간만 책임진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놓인다.

한 점 한 점 점 찍어가는 과정에서 당장 눈앞에 보이는 건 희미하고 추할지 모르지만, 언젠가 완성된 작품을 멀리서 본다면 지금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를 포함해 ‘돌봄’과 ‘작업’을 동시에 쥐고 있는 이들이 포기하지 않고 작은 점들을 계속 찍어 나가기를, 또 ‘돌봄’을 위해 ‘작업’을 포기했던 이들이 슬그머니 ‘작업’을 다시 손에 쥐기를 바란다.

윤소희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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