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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 | 한겨레출판 | 2021년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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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김초엽 작가를 알게 되면서 생소한 SF소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1993년 출생한 앳된 작가이고 화학을 전공하고 소설가가 되었다. 화학을 전공하고 작가가 되었다면 다소 의아스럽지만, 화학을 전공하고 SF 작가가 되었다면 어딘가 오~ 설득이 된다. “학생시절 화학 원소 주기표를 보면서 그 원소들의 규칙에 매료되어 화학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말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가 하는 이야기들은 전혀 낯설지 않다. 그의 작품은 내가 SF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편견과 망설임을 한꺼번에 깨주었다. SF소설은 어렵고 난해한 과학 이야기, 내가 사는 세상과는 동 떨어진 이야기들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우연히 김초엽 작가의 작품을 읽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그의 책을 한 권 한 권 찾아 읽다가 전부 읽어버렸다. 김초엽 작가의 첫 소설집에서 김초엽 작가가 이야기 하는 방식을 탐색하였다면, 그의 두 번째 소설집을 읽으면서는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가 설정한 새로운 세상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질적인 존재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말했듯이 “미래에 대한 예측은 미래를 알아맞히기 위해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예측해 봄으로써 현재를 조정하는 힘을 발견하는데 있다.” 미래속에서 현실을 보는 것, SF가 그 역할을 톡톡히 해주는 것 같다.
이 단편집에는 7개의 작은 단편소설이 들어있다. 모든 소설에는 일관되게 등장하는 소외된 존재가 있다. 인간들 속에서 소외되는 인간이 등장하는가 하면, 미래 인간들 속에서 소외되는 현 인류도 등장한다. 그들의 특별함은 결함과 결핍으로 간주되어 소속된 공동체에서 소외되고 배제되지만, 결국 그 태생적인 결함은 ‘나’라는 개체의 고유함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는 누구나, 어떤 특정된 환경에서 소수자-소외된 자가 될 수 있고, 그것은 결국 결핍이나 결함이 아니라 특성이고 구원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이러니하지만, 뒤바뀌고 뒤틀린 미래에서만 똑바로 보이는 현실이 있다.
단편에서는 새로운 직업—우주 유품정리사인 로몬종족이 등장한다. 그들은 멸망행성을 탐사해 필요한 것을 얻거나, 의뢰를 받아 유품을 찾아주기도 한다. 부단히 우주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현실에 비추어볼 때 미래 필요한 직업일 것 같기는 하다. 로몬은 두려움을 모르는 담대하고 강인한 종족, 그러나 ‘나’는 로몬에게 치명적인 결함인 ‘두려움’을 가진 심약한 로몬이다. ‘나’는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해 애써왔지만, 잘못된 종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떨쳐 낼 수가 없었고 평생 내가 가진 결함의 근원을 찾아 헤맨다.
어느 날 나에게 시스템 이 분류한 단독 의뢰를 받아들여 불멸인의 세계에 이르렀고 거기에서 로봇 셀을 만난다. ‘내’가 도착한 세계는 부단히 복제인간을 만들어내 건장한 신체를 교체하면서 살아가는 불멸인들이 살았던 세계였다. 불멸인들은 한차례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불멸이 불가능해졌고 두려움으로 몰락해 갔다. 그들은 다른 세계로 도주했고, 그곳에는 로봇들만 존재했는데 로봇들 또한 폐기된 로봇 속에서 망가진 부품을 교체해가면서 겨우 ‘연명’해 가고 있었다. 로봇 셀과의 만남에서 ‘나’는 그 세계에서 살던 유전적 결함을 가져 폐기 처분될 운명이었던 복제인간 라이오니의 복제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구원요청을 보내 나의 행성으로 돌아간다.
그 외 기타 소설에서는 호흡으로 의미를 읽는 지하인들의 세계에서 음성언어로 소통하는 원형인간(현 인류)이 오히려 실험대상으로 되고 소수자로 소외된 채 살아가는 이야기, 정상인들에 의해 소외된 시지각적 장애-모그들이 펼친 반란, 몸 정체성 통합장애를 앓고 있어 기어이 세 번째 기계 팔을 단 로라를 이해하기 위한 ‘나’의 외로운 탐구 등등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작품이 주는 메시지는 다양하다. 현재 기술적 문제를 제쳐놓고 인간 복제는 윤리적인지, 나아가 현재 과학기술로 도달하려는 영원한 삶-죽음 극복이 과연 인간을 더 좋은 곳으로 데려갈 수 있는지 반문한다. ‘두려움’은 인간 고유의 특성인지, 극복해야 할 결함인지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평소 쉽게 판단하고 구분 짓는 장애나 결핍은 생물학적 결함인지, 시대와 공간이 정의한 문화적 낙인에 불과한지 반추하게 한다. 나아가 현실에서 장애인은 정상에 도달하지 못한 결핍된 인간이 아니라 다른 인지 체계를 가진 사람일 뿐이라 정의한다.
미래를 한 바퀴 돌고 현재라는 우리가 발 디디고 사는 이곳에 다시 이르렀을 때, 우리는 무엇을 새롭게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지, 김초엽의 SF는 그런 것들을 보여준다.
이분선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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