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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리터러시 ④] 여섯 왕조의 수도 난징 ‘육조박물관’서 엿본 韩中 삶의 흔적

[2024-12-04, 14:59:39] 상하이저널
중국 박물관에서 韩中 교류 흔적 찾기

박물관을 탐방하고 감상하는 법은 어디서, 누구로부터 배울 수 있을까? 중국에 거주하는 우리는 얼마나 중국의 역사와 유산을 이해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한중 교류의 흔적을 찾아 진정한 소통을 하고 있을까? 

박물관 리터러시(literacy)는 이러한 과정에서의 필수적인 관람 태도를 강조하는 개념이다. 이는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는 능력을 넘어, 전시된 유물과의 대화를 통해 역사적 이해를 심화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유물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중국 박물관에서 한중 교류의 흔적을 찾는 것은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어떠한 역사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자각하게 하며, 동시에 중국 역사문화와의 상호작용을 깊이 이해하는 데 큰 통찰을 제공한다. 본 칼럼에서는 화동 지역의 박물관과 전시를 돌아보며 박물관 문해력을 키워 그 방향성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4 육조(六朝)박물관 
 여섯 왕조의 수도ㅋ 난징 ‘육조박물관’서 엿본 韩中 사후세계와 삶의 흔적 

얼마 전, 난징으로 여행을 떠나겠다는 지인이 내게 물었다. 난징대학살기념관과 이제항위안부유적지를 가보려고 한단다. 난징에 있는 고궁박물원에도 가봐야겠지 않겠냐고 묻는 지인에게 잠시 고민하다 ‘육조박물관(六朝博物馆)’을 추천했다. 난징이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슬픔의 공간들을 돌아본 후라면, 육조박물관이야 말로 이 도시의 깊은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사진=육조박물관 전경]
 
[사진= 동오(东吴), 동진(东晋), 송(宋), 제(齐), 양(梁), 진(陈) 육조의 이름이 새겨긴 깃발]

난징은 6개의 왕조가 도읍으로 삼았던 곳으로, ‘육조고도(六朝古都)’라는 이름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육조 시대는 동오(东吴), 동진(东晋), 송(宋), 제(齐), 양(梁), 진(陈) 등 여섯 왕조가 난징을 수도로 삼으며 이어진 시기를 말한다. 이 역사적 흔적은 오늘날 난징의 도시 곳곳에 스며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각 왕조의 이름이 새겨진 6개의 깃발이 천장에서 아래로 이어져 관람객을 맞이한다. 육조 시대는 229년, 손권(孙权)이 건업(建业)을 수도로 정한 이래로, 수나라가 성벽을 허문 589년까지 약 300년간 이어졌다. 이 300년 동안 난징은 동아시아 문명의 중심지로 자리 잡으며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쌓아갔다.

313년 건강성(建康城) 고대인의 유적

육조박물관은 313년에 세워진 건강성(建康城) 유적 위에 자리하고 있다. 지하 전시장에서는 당시 발굴된 성벽과 유물들을 만날 수 있다. 1600여 년 전, 건강성의 성벽은 단순한 방어 구조를 넘어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상징이었다. 이 성벽 앞에 서면, 많은 인력을 동원할 수 있었던 강력한 권력 체계와 전쟁 속에서도 가족과 삶의 터전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노력이 생생히 떠오른다. 성벽은 이렇게 단순한 방어 구조물이 아니라, 고대인들의 협동과 희생이 집약된 공간이었다. 이를 통해 당시 사람들이 전쟁과 혼란 속에서도 어떻게 생존과 안정을 추구했는지 엿볼 수 있다.

죽음을 극복하고 삶을 이어간 흔적들

손권이 등장하는 중국 삼국지에는 영웅들의 이야기가 주는 낭만과 우정, 그리고 극적인 전투 장면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 삼국지의 화려함 뒤에 가려진, 이름 없는 보병들과 무고한 시민들의 삶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나라를 위해 싸운다는 명분 속에서 전장에 끌려갔다가 돌아오지 못했으며, 남겨진 가족들은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사진=건강성(建康城) 성벽 유적 퇴적층]

그 시절 이 성에 살던 사람들에게 삶의 제1목표는 단순하게도 ‘생존’이었을 것이다. 전쟁이 잠시 멈췄다 하더라도 질병과 가난, 그리고 배고픔은 여전히 그들의 삶을 위협했다. 특히 성벽 안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적인 식수였다. 육조박물관에 전시된 배수시설과 우물 덮개로 사용된 도자기는 단순히 기술적 발전을 증명하는 유물이 아니다. 물의 오염을 막고 위생을 관리하려는 필사적인 노력이 담긴 흔적이다. 그 때문인지 도자기로 만들어진 우물 형상 앞에서 우두커니 서 발걸음을 옮기기 어려웠다. 

[사진=도자기로 만든 우물 형상]

건강성의 배수구 유적은 7세기의 백제의 익산 왕궁리 유적과 유사하다. 하지만 어디에서 먼저 배수 시설이 발견되었는지를 따지는 ‘선진성’에 대한 논의보다 당대인들의 처절한 삶의 무게와 생존의 고통이 먼저 느껴졌다. 물 한 방울조차 소중했던 그 시대 사람들의 간절함이, 시간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는 도자기처럼, 그 흔적들이 우리에게 여전히 말을 걸고 있는 듯하다. 

물질에 나타난 고대인들의 구복신앙

지하 전시장에서 벽 한 켠을 장식한 와당을 만났다. 위에서부터 귀면과 연화문 등의 문양이 와당에 새겨져 있었다. 건축의 가장 바깥부분을 둘러싸고 비와 바람으로부터 집을 보호해주는 와당은 단순한 건축 부재를 넘어, 상징성으로 가득한 장식물이었다. 귀면은 악령을 물리치는 벽사(辟邪)의 상징으로, 연꽃문양은 부처님의 자비를 빌어 생명을 지키려는 믿음을 드러낸다. 단순한 장식이 아닌, 죽음을 거부하고 생명을 지키고자 했던 고대인들의 염원이 담긴 장식물인 것이다.
 
[사진=육조 시기의 와당으로 장식된 벽면]

이러한 구복적 상징은 단순히 건축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2층 전시장으로 이동하면, 닭머리가 장식된 항아리, 계수호(雞首壺)를 통해 또 다른 형태의 구복신앙을 만날 수 있다. 박물관에서 만난 계수호는 죽음을 넘어 새로운 삶과 재생을 기원하는 염원의 상징이었다. 닭은 새벽을 알리는 동물로, 생명과 재생을 상징한다. 특히 닭의 중국어 발음 ‘지(JI)’는 복을 염원하는 ‘지(吉)’와 발음이 같아, 구복신앙의 주요 소재로 사용되었다.
  
[사진=육조박물관 소장 계수호]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중국 계수호(충남 공주 수촌리 유적 출토)]

비슷한 형태의 계수호가 한반도 백제 강역의 공주 유적지에서도 발견되었다. 공주 유적지의 계수호는 흑갈색으로 장식되었지만, 닭머리 모양장식과 기형적인 특징 등 본질적인 형태와 상징적 요소가 모두 중국 계수호와 동일하다. 두 유물은 사후세계를 향한 믿음과 염원이 국경을 넘고 드넓은 바다를 건너 공유되었음을 보여준다.

‘혼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장식병 역시 사후세계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다. 이 항아리는 지하세계, 인간세계, 천상세계로 나뉘어 고대인들의 생사관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표면의 지하세계는 지렁이가 드나드는 구멍으로 상징되며, 인간세계는 항아리 위에 얹힌 기와집과 다양한 장식으로 묘사된다. 천상세계는 승천하는 비천상과 새 장식으로 가득 차 있다. 
  
[사진=육조박물관 소장 혼병]

[사진=경주박물관 소장 토우장식장경병]

우리나라 경주에서도 이러한 장식이 가득 부착된 항아리가 발견되어, 삶과 죽음, 생명의 탄생 등을 표현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장식들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영혼이 지하에서 천상으로 승천하며 평안히 안식할 수 있도록 기원하는 구복적 의미를 담고 있던 것이다.

죽음을 기억하는 방식

육조박물관의 화상전(画像砖)과 악기 연주 장면을 묘사한 부장품(副葬品)은 죽음을 기억하는 고대인의 방식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다. 화상전은 무덤 벽돌에 무늬를 찍어 장식했다는 데서 유래한 명칭이다. 고대인들은 무덤 속에도 화려한 꽃문양을 새겨 죽음을 아름답게 장식하려 했다. 이는 가시는 마지막 길에라도 그 죽음을 기리고, 생전의 삶을 축복하려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공예품이다.
 
[사진=화상전(画像砖) 일괄]

악기를 연주하는 부장품 일괄처럼, 고대인들은 떠난 이를 기억하려 그들이 즐겼던 장면을 그대로 담아두고자 했다. 그들이 남긴 흔적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사랑과 기억을 표현한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이 부장품을 통해 삶을 기리고자 했던 방식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나는 내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무엇을 남기고, 또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사진=악기를 연주하는 부장품 일괄]

박물관을 나서며

죽음이라는 단어는 순식간에 우리를 철학적 사유의 공간으로 이끈다. 육조박물관은 1600여 년 전 강남 사람들이 삶과 죽음에 대해 품었던 염원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속에서 백제와 신라의 유물과 비슷한 흔적들을 만나며, 사후세계에 대해 우리가 공유했던 생각과 믿음을 다시금 돌이켜 보았다.

육조 시기 300년간 여섯 개 나라가 바뀌었고, 그 후에도 숱한 정권이 이 도시를 스쳐 지나갔다. 한반도에서도 수많은 나라들이 생겨났다 사라졌다. 하지만 국경이나 민족의 경계를 넘어, 우리가 물질을 통해 교류하며 나누었던 사유는 바다를 넘어 더욱 단단히 우리를 이어주었다.

박물관을 나서며 물질의 유한함과 사유의 영원함이 교차하는 지점을 떠올려본다. 물질은 유한하지만, 그 속에 담긴 사유는 역사를 관통해 우리 곁에 남았다. 1600년 전 육조 사람들이 남긴 철학적 흔적은 이렇게 우리와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주소: 江苏省南京市玄武区长江路302
•입장료: 성인 30元, 학생 15元

글·사진_ 성고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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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푸단대에서 고고학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과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에서 방문학자를 지냈으며, 한국미술사학회, 동양미술사학회, 유럽고고학회, 케임브리지-바로셀로나자치대 학회 등에서 연구성과를 발표했다. 졸업 후 푸단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한중 도자교류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gowoon_seong@fudan.edu.cn
gowoon_seong@fudan.edu.cn    [성고운칼럼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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