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과학 혹은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이라 불리는 ‘SF’는 미래 혹은 미래의 과학과 기술, 우주여행, 시간여행, 초광속여행, 평행우주, 외계 생명체 등을 소재로 하는 장르이다. 이 장르의 특징은 과학기술적인 면이 강조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SF 장르는 여전히 비주류로 취급 받고 있다. <스타워즈>, 등과 같은 세계적 흥행작도 우리나라에서는 흥행에 참패했다는 것에서 그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은 사정이 다르다. 2019년에 내놓은 SF영화인 <유랑지구>는 그해 중국 영화 시장에서 어벤져스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엔드게임>을 누르고 2위를 차지하며, 중국 시장에서 SF가 통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중국 고전 작품 속 SF
중국 드라마 '봉신연의'(2020년 作) 출처: 네이버
중국 고전 작품을 살펴보면 SF로써 해석할 수 있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봉신연의(封神演義)>를 들 수 있는데, 이 작품은 은나라 왕조 교체기를 배경으로 한 대표적인 신마소설(신선이나 귀신이 등장하는 환상적인 세계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분명 봉신연의는 신선과 요괴가 등장하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SF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등장인물 중 가장 눈에 띄는 이는 나타다. 나타는 출생부터 특이한데 신선의 보배에 의해 비사문천왕 이정의 아내 은씨에게 임신되어 그녀의 뱃속에 3년 6개월 동안 있다 태어난다. 이 과정은 현대의 실험관 아이를 연상시킨다. 그뿐 아니라 나타의 모습은 더욱 독특한데, 작 중 나타는 불붙은 바퀴를 달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는 마치 아이언맨처럼 로켓의 힘으로 날아가는 과학기술로 해석되어도 전혀 무리가 없는 부분이다. 또 그는 한 번 죽지만, 스승 태을진인의 도술로 연꽃의 화신으로 부활한다. 이 부분에서 로봇이나 인조인간, 혹은 복제인간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처럼 중국 고전에는 SF적 관점으로 해석해볼 수 있는 것이 적지 않게 등장한다. 중국에 SF는 그리 낯선 존재가 아닌 것이다.
SF의 시작은 민중계몽?
중국의 고전 소설에서도 SF로 볼 수 있는 부분을 찾아볼 수 있지만, 본격적으로 ‘SF’가 서양의 사이언스 픽션이라는 개념으로써 중국에서 시작된 것은 계몽을 위한 번역서였다.
쥘베른의 달나라 탐험 출처: YES24
당시 중국에 과학이 꼭 필요하다고 믿었던 중국의 문인들이 대중을 계몽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서양의 SF소설을 번역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20세기 초 유명한 문인들이 직접 SF 작품 번역에 뛰어드는데 량치차오(梁啓超), 빠오샤오티엔(包笑天), 우엔런(吳妍人) 그리고 루쉰(魯迅) 등이 대표적이다. 근대 중국 정치와 사상의 선각자였던 량치차오와 '중국 현대 문학의 아버지'라고 평가받는 루쉰이 이 번역 작업에 뛰어들었다는 것은 그 당시 중국 지식인들이 SF를 얼마나 진지하게 보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루쉰은 <달나라 탐험>의 번역서 서장에서 SF소설을 ‘날줄에는 과학을, 씨줄에는 인정을’(經以科學,緯以人情)이라고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부패하고 무능했던 20세기 중국을 과학의 힘으로 바꾸고 싶었던 당시 지식인의 열망이 SF의 수용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볼 수 있다.
영화로 발전한 중국의 SF
<유랑지구(流浪地球)>(감독 : 궈판郭帆)의 포스터(출처: 바이두)
2019년 중국의 영화 시장에서 가장 큰 화제는 단연 자국의 SF블록버스터 <유랑지구(流浪地球)>(감독 : 궈판郭帆) 였다. 대표작 <삼체(三體)>로 아시아 작가 최초로 2015년 제73회 휴고상을 수상한 류츠신(劉慈欣)의 소설을 영화화한 <유랑지구>는 제작비 550억 원으로 전 세계 매출 8천억 원을 기록해 <전랑(戰狼)2>(2017년 作)에 이어 중국 역대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다. 영화의 줄거리는 ‘태양이 적색거성이 되었을 때 지구를 하나의 거대한 로켓으로 사용하고, 영하 70도, 목성 충돌 37시간 전, 대재앙을 맞은 지구를 옮기기 위한 범우주적 인류 이민 계획을 그린 SF 재난 블록버스터’라고 한다. 물론 주역들은 중국인이다.
유랑지구는 SF라는 아직은 대중에게 낯선 장르를 바탕으로 중국식 스토리를 풀어낸 점, 자국 기술로 괜찮은 CG를 구현해낸 점, 그리고 ‘중국 SF영화’라는 타이틀로 해외 시장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는 점에서 환호받았다. 중국의 SF영화 중 가장 큰 성공작이라는 것 외에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영화가 공교육 과정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교육기관과 관련 매체에서 <유랑지구>와 관련된 ‘대입 시험 출제 포인트’를 내놓는 현상에 호응이라도 하듯, 9월 17일 중국 교육부에서는 <유랑지구>를 포함한 ‘제39차 전국 초•중학생에게 추천하는 우수 영화 목록(第39批向全國中小學生推薦優秀影片片目)’을 발표했다.
<유랑지구>의 흥행은 중국 문화사에 있어 커다란 사건임이 틀림없다. ‘중국에서 SF는 성공할 수 없다’는 불안감을 떨쳐 낸 <유랑지구>는, 앞으로 중국 문화계가 코미디 혹은 애국심을 강조하는 역사물만이 아닌 SF로 도전하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학생기자 이혜원(저장대 영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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