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최남단에는 마라도, 최동단에는 독도, 최서단에는 가거도” 신기하게도 우리나라는 영토의 극점을 말할 때 ‘섬’을 기준으로 삼는데 이것은 한국이 수많은 섬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한국에는 약 3348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있다. 이는 인도네시아(15,000개), 필리핀(7,100개), 일본(6,800개)에 이어 세계 4번째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에 있는 3348개의 섬을 모두 가기 위해 매주 1곳씩 간다고 하더라도 64년이 걸릴 정도라고 하니 그 수가 굉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은 평화롭고 아름답기만 한 한국의 섬들 중 상당수는 일제 침략의 희생물로, 아픈 역사와 흔적을 고스란히 찾아볼 수 있다. 일제에 의해 빼앗겼던 ‘민족의 섬’ 3개를 소개한다.
민족의 성지, ‘뚝섬’
서울 한강공원에 위치한 뚝섬은 한강의 아름다운 경치는 물론 운동장, 수영장, 놀이터, 스케이트보드장 등 다양한 문화시설이 조성된 관광지다. 뚝섬은 바쁜 일상을 사는 현대인에게 ‘도심 속 휴식처’로도 유명하다. 뚝섬은 1980년대 초 실시된 한강종합개발사업에 의하여 육지화가 이뤄졌지만, 그전에는 지대가 낮아 물길을 건너야만 도착할 수 있는 신성한 섬이었다. 뚝섬의 역사는 지명의 유래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 조선 태조 때, 뚝섬 부근에 삼지창에 붉은 털이 달린 ‘둑(纛)’이 떠내려와 ‘뚝섬’으로 불리게 됐다는 유래를 가지고 있다.
둑은 당시 조선 군대가 행진할 때, 대장 앞에 세우는 깃발로 조선의 군사권을 상징하는 매우 중요한 깃발이었다. 그래서 이를 심상치 않게 여긴 태조는 뚝섬에 둑을 모시고 봄•가을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1940년대까지 잘 보존되었던 둑은 어느 날 큰 장마에 휩쓸려 흔적 없이 사라졌다. 이에 독립운동가들은 둑을 다시 복원하여 민족정신을 부활시키려고 했지만,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게 뚝섬은 일제에 의해 본래의 전통과 의미를 모두 빼앗긴 채 유원지가 되었다. 현재 한국인에게 특별한 장소로 자리 잡은 뚝섬, 이 섬에 대한 우리 민족의 사랑은 600년 넘게 변함이 없는 것 같다.
100여 년 만에 되찾은 이름, ’물치도’
최근 인천광역시 동구에 있는 작은 섬의 명칭이 큰 화제가 됐다. 이것은 인천시 동구가 일제에 의해 사용된 ‘작약도’라는 명칭을 지우고 고유의 이름이었던 ‘물치도’로 바꾸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물치도는 “강화해협의 거센 조류를 치받은 섬”이라는 뜻으로 오래전부터 물치도라는 고유의 명칭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883년 개항 이후 이 섬은 일본인에게 매입됐고, 일제는 이 섬의 형태가 작약꽃 봉오리를 닮았다고 하여 ‘작약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의 고유 명칭이었던 ‘물치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고 지도에 ‘작약도’로 표기된 지 어느덧 1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마침내 올해 7월, 국가지명위원회는 인천 동구 만석동 산 3번지 '작약도'의 이름을 '물치도'로 변경하는데 결정하였다. 이는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새로운 미래를 향한 도약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거제의 아름다운 동백섬, ‘지심도’
경상남도 거제시에 위치한 지심도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음 심(心)자와 닮았다고 하여 지심도라는 명칭을 얻었다. 한려해상국립공원 끝자락에 있는 지심도는 경이로운 해안 절벽과 무성하게 자란 동백나무로 유명하며 국내에서 자연이 가장 잘 보존된 유인도로 평가된다.
그러나 아름답게만 보이는 이 섬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는데 8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으며 아직도 곳곳에 일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1936년, 일제의 해군기지로 사용된 지심도에는 당시에 설치된 일본군 소장 사택, 탐조등 보관소, 방향 지시석, 포진지, 탄약고 등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온전히 남아 있는 아픈 역사의 터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일본군 소장의 사택으로 사용되었던 일본 목조식 가옥은 현재 카페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 외에도 많은 건축물은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것으로 확인된다.
해방 직후, 지심도는 대한민국의 군사적 전략지로 국방부가 소유하게 되었고 이전부터 거주하고 있던 주민들을 제외한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되었다. 2017년, 거제시 소유로 전환되면서 지심도는 군사적 전략지에서 벗어나 한국의 관광지로 성장하고 있다. 그러나, 소유가 전환되면서 거제시는 지심도 주민에게 강제 이주를 요구함으로써 지심도의 완전한 평화는 아직 찾아오지 못했다.
학생기자 박준용(상해한국학교 11)
ⓒ 상하이방(http://www.shanghaiba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