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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코로나 대응 잘했다… 이제 의료 사각지대 살필 때”

[2020-12-04, 13:42:15] 상하이저널

상하이저널 창간 21주년 기념 기획 
코로나19 위기를 함께 넘는 사람들 
⑦ 비대위 의료지원팀 홍성진 원장(자후이국제병원) 

“코로나 대응 잘했다… 이제 의료 사각지대 살필 때”



코로나19 발생 직후 교민들은 당황했다. 처음 맞는 역병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비슷한 증세가 생기면 불안감을 넘어 공포까지 느껴졌다. 그나마 상하이 교민사회는 다행이었다. 비대위가 있었고, 그 안에 감염 내과 전공의인 한국인 내과 의사 홍성진 원장(자후이국제병원)이 의료지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로나 발생 후 상담이 늘어 밤 10시는 기본, 새벽 3시에 퇴근하기도 했다. 약 10개월 가까이 이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더욱 힘든 것은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교민들, 그들의 생명이 오가는 급박한 상황을 한국인 내과 의사 한 명이 감당해야 하는 압박감이다.”

진료실에서 만난 홍성진 원장은 상담(진료) 환자의 심각성 정도를 색깔별 책갈피로 구분해 놓은 여러 권의 진료 노트를 꺼낸다. 코로나 발생 후 약 10개월간 진행된 2000건의 상담은 전문가 소견으로 간단히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코로나 대응을 잘했다고 칭찬하고 끝날 것이 아니라, 지속되고 있는 교민사회 의료 취약점과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노트 안의 수많은 사례가 교민사회 의료 안전망을 갖춰야 하는 이유라는 것이다. 

상하이 민관합동 비상대책위원회의 활약 중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불철주야 고군분투한 분야가 의료지원팀이 아니었나 싶다. 구체적으로 어떤 지원을 했나?

처음 겪는 사태에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의학적인 상담과 응급 상황을 판단해서 다음 단계로 연계하는 것이었다. 상하이 화동지역 교민들 뿐 아니라 중국 각지에서 상하이 비대위에 도움을 요청해 왔다. 산동성, 푸졘성, 내몽고, 신장을 비롯 봉쇄된 우한까지…. 10명 중 1명 정도가 타 지역 교민들 문의였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에는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의심증상이 있는 교민들이 코로나19인지 감별하기 위한 문의가 주를 이뤘다. 신체적인 증상 외에 집단 공포가 컸던 시기였다. 현재까지 약 2000여 건의 코로나 관련 문의를 받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의심 증상에 대한 문의는 줄었으나 코로나로 인해 한국을 가지 못하거나 병원 이용이 원활치 않아 제때 진단과 치료를 받지 못하는 교민들의 건강 질환에 대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의료정보 지원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상황과 대응 사례 소개.

위급했던 몇 가지 사례가 떠오른다. 중국으로 복귀하는 한 교민 남성이 격리 중인 호텔의 문을 떼고 탈출을 시도하는 등 공황 발작 증세를 일으켰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정신적으로도 교민들을 힘들게 했다.

또한 코로나 초반, 상하이에서 자가 격리 과정에 있던 가족의 영유아가 화상을 입었는데 곧바로 병원으로 가지 못하는 상태에 놓였다. 외국인, 특히 격리자들의 병원 이용에 제약이 있던 때다. 민관합동 비대위를 통해 상하이시 민정국과 위생국에 연락해서 부모와 아이가 함께 병원을 방문할 수 있었고, 다행히 늦지 않게 적절한 의료 조치를 취했다. 

이 밖에 교민들의 위급한 상황에 한국 소아과, 산부인과, 외과 선생님께서 드러나지 않게 아주 많이 일하셨다. 또 의료진이 아니어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신 분들이 큰 감동을 주셨다.

비대위 의료지원팀으로 활동하면서 느낀 코로나19 어땠나?

코로나가 일상화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들이 신체적, 심리적 건강 모두 취약한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을 또 한번 깨달았다. 많은 교민들이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누구 한 사람이 아니라 교민사회와 영사관 등이 모두 머리를 맞대 의료 안전망을 만들어야 할 때다.

의료 안전망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특별한 이유?

유학생, 주재원 등을 제외하면 약 절반의 교민들이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들은 한국 의료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것은 물론, 사정이 어려운 교민들은 개인 상업보험 가입도 어렵다. 보험이 없으니 비싼 의료비가 부담돼 병원 이용을 제때 하지 못한다. 이처럼 기본적인 의료 안전 시스템 안에 들어 올 수 없는 교민들이 절반 정도 차지한다는 것이다.

시간을 다툴 만큼 위급한 상태에서도 치료를 받지 못해 생사가 오가는 경우를 접할 때마다 식은 땀이 난다. 일례로 몇 달 전 한 중년 남성이 이상 증세를 느껴 병원을 방문해서 CT 촬영을 권했으나 비용이 부담된다며 그냥 돌아갔다. 며칠 후 다시 찾아왔을 때는 증세가 심각했다. 뇌출혈 상태여서 다급하게 수술해서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또 한 분은 코로나로 한국을 가지 못해 당뇨병 관리가 제대로 안돼 합병증이 왔다. 한 달간 몸이 힘들었고 중국 공립병원에서 검사 후 입원을 권했으나 신뢰할 수 없다며 주말을 참고 보내다가 심각한 상태에 이르러 다시 병원을 찾아 왔다. 최근에는 20~30대 젊은 직장인들까지 뇌경색, 감상선 암 진단을 받은 사례도 있다. 

한국에서는 동네 병원-대학 병원으로 이어지는 간단한 절차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제때 검사를 받지 못해 위기상황에 놓이거나 목숨이 오갈 정도의 사례를 여러 차례 목도한다. 사명감을 갖고 하고 있지만 내과 의사 혼자 교민사회 전체를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사실 겁이 난다.

사각지대에 놓인 교민사회의 의료 안전 시스템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은?

기본적으로는 국가(영사관)가 나서 해외 교민들의 건강 권리를 찾아줘야 한다는 생각이 크다. 그러나 당장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화동지역만이라도 교민사회 스스로가 의료 안전망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상하이의 일본 교민들의 경우는, 국가에서 의료영사를 파견해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의료영사는 관할 지역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한다. 국가에서 일부 건강보험도 지원한다. 물론 상업보험이 발달돼서 한국 교민들만큼 취약한 상황은 아니지만 국가가 해외 교민들의 건강 권리를 책임지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한국상회와 같은 상공회 차원에서 단체보험을 만들어서 교민들의 더 나은 의료 혜택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보험을 통해 중국 공립병원 진료도 보험혜택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교민들의 취약한 의료 시스템에 관심을 갖자는 것은 더 살자는 ‘웰빙’이 아니라 ‘생존권’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을 갖추자는 것이다.
 
수년 째 해오고 있는 의료상담 지원에 어려움은 없나?

비대위 활동은 끝났지만 여전히 코로나 전과 마찬가지로 SOS솔루션 의료팀에 참여해 의료상담을 진행 중이다. 끊임없이 문의가 오고 답변을 해줘야 한다. 온라인상의 문의와 답변은 간단하지만 정확한 답변을 위해 찾아봐야 하는 자료도 많다. 한 건에 2~3시간 걸리기도 한다. 약에 대한 질문에 사진 한 장으로 답변하지만 한국어, 영어, 중국어를 검색하고 제약사, 용량 등을 조사해야 한다. 위중한 환자들은 기록도 해야 한다. 복잡한 사례는 더욱 자세한 기록이 필요하다. 

더욱 힘든 것은 앞서 말했듯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교민들, 생명이 오가는 급박한 상황을 한국인 내과 의사 한 명이 감당해야 하는 압박감이다. 코로나 대응을 잘했다고 칭찬하고 끝날 것이 아니라, 지속되고 있는 의료 취약점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때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고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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