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21일은 나의 열한 번째 생일이었다. 2009년 당시 단 3명으로 출발한 자원봉사자는 지금 40 여명, 그리고 정기적으로 도움을 주는 청소년 자원봉사자가 10 명이 되었고 한국어, 영어, 중국어 모두 합하여 2만 여권이 넘는 도서를 보유하고 있고 월 평균 400명이 넘는 사람이 드나드는 나는 상해 희망 도서관이다. 개관 이후 그동안 법정 국가 공휴일 외에는 문을 닫은 적이 열 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열심히 문을 열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많은 것들이 그러했듯이 나의 이 부지런한 전례 또한 깨져버렸다. 시 정부의 지침 아래 나를 포함한 이 도시의 많은 것은 한 순간에 멈췄고 나는 아무도 드나들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분명 이전과 똑같이 살아 있었지만, 마치 모든 기능이 멈춘 것 같았고 또 완전히 멈춘 것 같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롯이 움직이며 숨 쉬고 있었다. 코로나는 이렇게 이상한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강력한 것이었다.
그렇게 처음 맞아보는 이 낯설고 힘든 시간을 묵묵히 견디며 두 달을 폐관한 이후 4월 1일에 조심스럽게 문을 열기로 결정했다. 코로나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도서관의 오픈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상해의 많은 교민들이 그러했듯이 한국에서 돌아오지 못 하는 봉사자들이 많았다. 그리고 성인 자원봉사자의 평균 연령대는 40대 중 후반, 대부분이 가정주부로 열이면 아홉에 가까운 봉사자가 학령기 자녀들을 양육하고 있었기에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하는 상황에서 오후에 시간을 내는 것이 쉽지 않아 최소한의 인원으로 봉사 시간표를 짜고 문을 열어야만 했다. 또한 나는 아무도 나의 행동의 결과를 책임져 줄 수 없는, 순수한 민간 자원봉사자로 이루어진 작은 기관이었기에 더욱 더 철저하게 예방 수칙을 지키고 조심스럽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정부의 방역 지침을 최대한 준수하고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비치하고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책 대출과 반납만 가능하고 열람실에서 머물며 책 읽기가 되지 않는 반쪽 자리 오픈 방식을 택했다. 기존과는 다른 낯선 운영 방식 때문에 초반에는 엄마 손을 잡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을 생각으로 신이 나서 집을 나섰던 어린 친구가 도서관에서 책을 볼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푹 숙인채로 이 책 저 책 뒤적거리다가 아쉬운 마음으로 책을 몇 권 고른 후 풀이 죽은 채로 도서관을 나가기도 했다. 나는 그 아이 뒷모습을 보며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어서 빨리 끝이 나고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가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너무 오래 지속된 탓일까? 우리가 이 현실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사이에 코로나는 전 세계를 휩쓸고 삶의 당연한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고 많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하나의 큰 아픔이 되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코로나19를 맨 처음으로 앓게 된 중국 정부의 선제적인 방어로 상해는 점점 일상을 회복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다시 또 회의를 열고 6월 1일부터 오전과 오후를 모두 개방하는 것을 결정했다. 또한 열람실의 몇 개 되지 않는 마주 보던 책상과 의자를 모두 한 방향으로 향하도록 바꾸게 되면서 작은 공간이지만 나름의 거리두기를 하며 지난 4월부터 금지 되었던 도서관에서 머물며 책 읽는 것이 드디어 가능하게 되었다. 열람실에 누군가가 자리를 잡고 앉아서 느긋하게 책장을 넘기는 이 당연하고도 평범한 모습을 보는 것이 무려 넉 달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또 다시 베이징에서 확진자가 나오면서 나는 긴장의 끈을 다시 조였다. 도서관이 있는 건물 1층에서도 다시 출입을 강화하기 시작했고 봉사자들과 내관하시는 회원과 아이들에게도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하도록 안내 하였다. 무더운 여름 마스크를 하면 인중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숨이 턱턱 막혀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은 나에게는 선택 사항이 아닌 필수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올해 상해는 7월부터 모든 학교가 일제히 방학이 시작되었고 예전처럼 한국과 다른 외국을 오갈 수 없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훨씬 더 많은 방문 회원으로 나는 정말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기에 별도의 휴관 없이 학교 개학 전까지 쉬지 않고 문을 열었다. 아마 도서관을 개관한 이래로 가장 바빴던 여름날을 보냈을 것이다. 무덥고 긴 상해의 여름 유난히 갈 곳이 마땅치 않은 이곳에서 엄마 아빠 손잡고 문을 여는 귀여운 꼬마 아이들, 또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사이좋게 책을 읽으러 오는 아이들, 간혹 더운데 수고하신다며 시원한 비타민 음료를 건네는 분들로 북적북적 거리는 모습을 보며 잠시 코로나를 잊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시간이라는 것은 때로는 주어진 나의 상황과는 무관하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스쳐 지나간다. 이번 여름이 내게는 그러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쉼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나니 끝날 것 같지 않던 여름이 어느덧 지나 있었고 무탈하게 아무런 사고 없이 그 시간들을 보낼 수 있었음에 참으로 감사하다.
작년 12월부터 조용히 시작된 이 보이지 않는 전쟁 같은 시기가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처럼 여전히 끝나지 않고 어디에선가 또 다시 처음처럼 진행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나를 꿋꿋하게 지켜주는 50여명의 성인/청소년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많은 후원자 분들과 함께 해왔기에 이 길고 힘든 시간을 외롭게 않게 잘 지나 왔을 것이다. 나는 단 하나의 희망을 열기 위해 보이지 않는 많은 분들의 아름다운 노력으로 이루어진 도서관임을 잊지 않을 것이다.
특별한 누구 하나가 아닌 모두가 함께 지나고 있는 이 어둡고 긴 싸움의 터널에서 종종 걸음으로 엄마와 함께 나를 찾아오는 어린 아이는 물론 흰머리가 성성한 어르신들에게까지 여전히 변함이 없는 모습으로 나 여기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나를 잊지 않고 기억 해 주는 사람이 있고, 무심코 발걸음을 돌려 찾아 주는 한 사람이 있고, 이 어려운 상황에 도서관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수줍게 말 건네주는 단 한 사람이 있다면, 모든 것이 변한 지금의 코로나 19상황에서 오늘도 어김없이 희망의 문을 활짝 열 것이다.
정선미(상하이 교민)
저는 상하이 희망도서관에서 4년째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닌 도서관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쓰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다 함께 힘겹게 지나고 있는 이 어려운 시기에 여전히 희망의 문을 열고 있는 많은 자원봉사자들과 또 도서관을 찾아주시는 한 분 한 분을 생각하게 되는 의미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2020년 우리가 무엇을 경험 했고 또 무엇을 깨달았으며, 다음 세대에 과연 무엇을 남겨줄 것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 보고 우리의 평범했던 일상의 소중함을 온 몸으로 기억하면서 코로나 19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아 가는 성숙한 어른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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