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한 통계나 자료가 없어도 한국인들에게 입시는 디딤돌이 아니라 주춧돌이라는 사실은 명명백백하다. 대학 진학의 1차적 목표는 성공이 됐고, 한국사회에서 성공이란 안정적이고 우수한 직장을 얻는 것을 의미하게 됐다. 그러므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취업과 미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취업률이 낮은 학과는 기피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문사철’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것은 ‘어문 계열 학과, 사학과, 철학과’의 줄임말로, 취업난이 심각한 요즘에도 특히 취업이 어렵기로 소문난 삼대장을 일컫는 말이다. 흔히들 ‘전화기’라고 불리는 전기전자공학과, 화학공학과, 기계공학과와 완전히 대비되는 용어다. 전화기 쪽 학과를 지원하는 학생은 문사철 계열 학생보다 훨씬 취업이 수월하다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에, 문사철 학과의 일원인 사학과가 우리나라에서 죽을 쑤고 있는 것도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학과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무궁무진한 기회를 학생에게 제공한다.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못했거나 사학과를 지망하고 있으나 취업 문제 탓에 걱정부터 앞선다면, 이번 기회에 사학과를 진학함으로써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자세히 알아보자.
사학과에서는 무엇을 배우나?
본인이 역사학도라면 자신이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정도는 알아두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사학과는 당연히 인문대학에서 가르치며, 한국 대학 기준 보통 동양사, 서양사, 한국사 과목을 전공 필수로 요구한다. 필수 과목 이수를 완료한다는 조건 하에 남는 자리에는 종교사와 고고학 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보통 한 학기에 1~2회 단체로 현장 답사를 가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역사가 암기 과목이라고 믿는 학생들이 많은데, 고등학교 과정에서는 어느 정도 사실이었을지 몰라도 학부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국내 대학과 국외 대학을 가리지 않고 암기보다는 역사적 흐름의 파악과 인과관계 분석 능력이 훨씬 중요하다. 물론 주요한 역사적 사건을 암기하고 있는 것이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 역사적 지식의 의미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고로 사학과에서도 암기 위주의 교육보다는 일차이차 사료 분석을 통해 학생의 주관을 키우고 그 주관을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제시하는 교육을 진행한다.
만일 본격적으로 역사를 공부하고 싶다면 학부 과정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역사학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원서, 사료, 논문 분석은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주로 다루기 때문. 상술했듯이 학부에서는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올바른 접근방식, 그리고 의미 파악 능력을 획득하게 되면 석사과정에서 그것을 다방면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사학과에서 유용한 지식
학부 과정에서는 영어 (한국의 경우 기본적인 한문 지식도 함께) 정도면 교육과정 소화가 가능하다. 하지만 역사학을 공부할 때는 외국어 능력이 굉장히 중요하다. 박사과정까지 생각하고 있다면 고어체나 라틴어 따위의 사어(死語), 당시에 쓰여진 1차 사료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언어 구사 능력이 필수적이다. 이는 사료 해석이 역사 연구의 매우 핵심적인 일부분이기 때문이며,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번역본이나 남이 쓴 논문을 읽는 제한적인 방식으로 지식을 쌓아야 한다.
세부적으로 간다면 동양사의 경우 일본어와 중국어가 가장 중요하고 서구의 관점을 심도 있게 알아보고자 한다면 영어에도 조예가 있어야 한다. 서양사를 배울 때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가 가장 중요하며, 원어민 수준으로 뛰어난 실력이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독해 능력이 탄탄해야 한다. 이는 외국에서 사학을 전공하던 국내에서 전공하던 비슷하다. 만일 사학 석사 이상을 희망하고 있다면 해당 언어를 어느 정도 배워 두도록 하자.
졸업 이후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사학과 졸업생이 평범하게 회사에 취직하는 것은 어렵다. 이는 역사 지식이 이윤 창출에 관련해서 쓰여질 일이 거의 없기 때문으로, 결국 기업 입사를 노리기보다는 다방면에서 진로를 고려해야 한다.
대학원 진학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사학과는 타 학과 대비 대학원 진학률이 높은 학과이며, 역사에 재미를 붙인 학생들이 그대로 사학과 석사 – 박사 – 교수 순으로 등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본인이 외국어 능력이 부족하거나 기타 사유로 인해서 사학과로 대학원 진학에 어려움이 따를 경우, 로스쿨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 실제로 사학과 졸업생들 중 로스쿨 진학을 선택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데, 이는 사학과에서 배우는 내용과 법조인으로써 요구하는 기술이 일맥상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료 분석 능력은 방대한 양의 법문서와 증거 자료를 매일같이 상대해야 하는 법조인에게도 대단히 유용하다. 로스쿨 진학을 꿈꾸고 있다면 사학과에서 기초를 쌓는 것도 좋은 선택.
박물관 혹은 문화유적, 학술단체와 출판 관련 진로에서는 사학과 졸업생이 취업에 유리하다. 이들 모두 폭넓은 역사적 식견을 요하는 직종이며, 학과에서 습득한 자료 분석 능력 및 흐름 파악 능력이 빛을 발한다. 이렇다 보니 교사 직종에 지원할 때도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된다. 사학과에서 습득한 기술은 다방면에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자료를 읽고 분석하여 합당한 결론을 내릴 줄 알아야 하는 곳이라면 어느 직장이든지 수요가 존재한다.
마무리
분명 쉬운 취업을 목표로 대학을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사학과는 그다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어딜 가나 기회는 존재한다.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사학과를 지원하고자 하는 학생도 분명 많으며 취업에 연연하지 않는 학생이 있을 수 있는가 하면 역사를 좋아해서 진학했으며 취업도 하고 싶은 학생도 부지기수로 널려 있다.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좋아하지도 않는 학과를 억지로 다닐 생각을 하고 싶다면, 결정을 내리기 전에 다시 한번만 생각해 보자. 오늘 기사에서 알아본 것처럼, 그 현실의 벽은 의외로 낮을 수도 있다.
학생기자 김보현(SAS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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