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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남희 | 마음산책 | 2021년 5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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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 속 가볍게 기분 전환용으로 읽을 수 있는 책 한 권 소개한다. 일본어 번역가 권남희 씨의 에세이집 『혼자여서 좋은 직업』이다.
‘언 콘택트 시대’에 어울리는 ‘혼자여서 좋은 직업’이라는 책 제목이 눈길을 끈다. 저자 권남희 씨는 20대에 번역에 뛰어들어 30년 동안 일본 문학만 전문으로 다뤄온 번역가다. 역서로는 『카모메 식당』,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배를 엮다』, 『츠바키 문구점』, 『창가의 토토』를 비롯하여 수백 권이 있다.
40대에 산문집 『번역에 살고 죽고』를 낸 것을 시작으로 50대엔 싱글맘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 공저인 『마감 일기』 등 몇 권의 산문집을 낸 작가이기도 하다.
『혼자여서 좋은 직업』엔 저자가 30년 동안 겪어온 번역가라는 직업 세계의 좋고 궂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가족, 친구, 번역업계 동료, 반려견에 관련된 일화들이 위트 있는 필치로 담겨있다.
신분증 재발급을 위해 지문 인식을 하려고 보니 20년 동안 200권 가까운 책을 번역하느라 열 손가락 지문이 다 닳아 본인 확인이 되지 않았던 일, 신춘문예 심사위원을 맡았던 일화, 록밴드 국카스텐의 하현우 씨 추천사를 받고 싶어 연락했던 일, 30대의 일본 여성 사형수를 모델로 한 아마존 1위 소설을 번역하게 된 일, 취업하고 나서 “엄마에게 맛있는 것을 사줄 수 있어서 너무 좋다”는 저자의 딸 이야기 등 일상의 소소한 낙들이 책 속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책에는 일본 작가들에 관한 에피소드도 등장한다. 아쿠타가와상 신인상 역대 최고령 수상자인 75세 할머니가 당선 소감으로 “살아 있을 때 발견해주어서 고맙다.”고 했다는 일화, 『사는 게 뭐라고』로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일본 작가 사노 요코가 늘 ‘센 언니’였지만 아들 앞에서는 보들보들해지는 엄마로 눈물 흘렸던 사연은 마음을 짠하게 한다.
밥벌이로서 시작한 일이지만 저자가 30년 동안 애쓰며 자신의 직업에 애정을 바쳐온 과정이 글 곳곳에 녹아 있다. 프롤로그의 제목처럼 “할머니가 되어서도 번역하고 싶다”는 저자의 바람이 이루어지길 응원한다.
책 속 특히나 마음에 들어온 한 대목을 옮겨본다(p.169).
“어느 때부터인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하지 않게 되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만나지 않고, 번역하고 싶지 않은 책은 정중히 거절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 더불어 사는 세상이니 하는 말에서 자유로워지자, 지구의 무게가 훨씬 가벼워졌다. 나이를 먹어서 뻔뻔해진 것인지 해탈한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최소한 사람의 도리를 하고 최대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세상을 왕따시키며 살고 있다. 물론 외롭다. 외롭지만, 편하다. 편하지만, 찜찜하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잠자리에 들며 혼자 반문하지만, 다음 날 해가 뜨면 또 찜찜하지만 편한 외로움을 선택하고 있다.”
큰 기대 없이 집어 들었으나 의외로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수수하나 여운 있는 에세이의 매력을 새삼 확인했다.
행복하게 산다는 건, 어떤 거창함이 아니라 책 속 일화들처럼 소소한 일상에서 느끼는 잔잔한 가벼움, 즐거움, 고마움의 집합 아닐까? 모두에게 작은 행복이 가득하길 바라면서 책 소개를 마친다.
최승희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