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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 문학동네 | 2018년 6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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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연 ‘무해한 사람‘이었나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에서도 그랬듯 최은영 작가는 <내게 무해한 사람>에서도 사회 속 다양한 여성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일곱 편의 중단편은 모두 여성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성들 간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사랑과 우정. 연대. 미움과 상처 폭력 애증을 이야기한다. 특히 인생에서 가장 미숙한 시절인 10대와 20대 시절, ‘미성년의 시간‘이 책 속에 스며있다.
책 제목은 수록작 <고백>에서 따왔다. “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하지. 그리고 그럴 수도 없을 거야.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 소설 속 미주는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친구 진희로부터 레즈비언임을 고백받는다. 미주는 경멸의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 시간이 흘러서야 미주는 자신이 진희에게 잔인하게 상처를 입혔던 시간들을 마주한다. 하지만 이미 진희는 세상에 없다. 미주는 뒤늦게 자신이 ‘유해한 사람‘ 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다른 수록작 <601, 602>에서는 공부도 잘하고 똑똑한 여자아이인 효진이 오빠에게 모질게 학대당하는 풍경이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그리고 아들을 방조하는 경상도 출신 부모의 모습이 나타난다. 초등학생 주영은 학대 사실을 숨기고 행복한 듯 생활하는 효진을 이해하지 못하며, 반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 효진을 보며 그런 집에서 태어나지 않은 자신의 처지를 안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주영은 효진을 향한 자신의 시선과 감정이 효진에게 의도하지 않은 상처를 줬음을 깨닫게 된다.
소설 속 인물들은 어린 시절의 미숙함과 학습된 편견 때문에 가까운 이에게 상처를 준다.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의도치 않게 타인에게 상처를 줬던, 잊고 싶은 순간들이 떠오른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말 한마디가, 그 행동 하나가 얼마나 다른 사람에겐 큰 상처였는지를.
작가는 말한다. 책을 읽으며 누군가에게 유해했지만, 스스로 무해하다고 여기며 살아온 지난날에 대해 반성하자고. 우린 모두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사람임을 인정하자고. 우리 스스로가 ‘유해한 사람‘임을 잊고 있을 때가 얼마나 많은지 책을 읽으며 찬찬히 곱씹어보자.
“나는 언제나 사람들이 내게 실망을 줬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보다 고통스러운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을 준 나 자신이었다. 나를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조차 등을 돌리게 한 나의 메마름이었다.”
박민주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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