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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지은이), 이어령 | 열림원 | 2021년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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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환갑이시던 해 내가 태어났다. 어렸을 적부터 할머니는 “이젠 죽을 때가 되었다”, “내 차례는 언제 오나”라는 말을 되뇌이시다가 결국 104세에 돌아가셨다. 결혼해서 집을 떠날 때까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항상 죽음이라는 단어를 들으면서 컸다.
“오늘은 내가 죽을 것이다”를 반복해서 얘기하시고는 그 다음날 다시 죽을 드시는 할머니를 보면서, 더 나이가 들어서는 죽음을 대하는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바라보면서, 양쪽 나라의 장례식을 드나들면서, 어느덧 나는 그 누구보다도 먼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상하이에서 살 때 읽었던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Being Mortal)>는 노후에 내가 병에 걸렸을 경우의 내 삶에 대한 자세를 미리 결정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얼마 전 뉴스를 통해 이어령 선생의 부고를 접했을 때 나는 자동적으로 그의 <마지막 수업>을 클릭해서 테블릿에 다운을 받고는 한숨에 읽어 내려갔다. 죽음을 기다린다기 보다 매일 밤 죽음과 마주하여 하루 더의 생명을 얻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하셨을 그가 내 앞에 그려지는 듯 했다.
매일 밤 눈 뜨고 죽음과 팔뚝 씨름을 한다.
근육이 풀린 야윈 팔로 어둠의 손을 쥐고 힘을 준다.
식은 땀이 밤이슬처럼 온몸에서 반짝인다.
그 많은 밤의 팔뚝을 넘어뜨려야 겨우 아침 햇살이 이마에 꽂힌다.
심호흡을 하고 야윈 팔뚝에 알통을 만들기 위해 오늘 밤도 눈을 부릅뜨고 내가 넘어뜨려야 할 어둠의 팔뚝을 지켜본다.
나의 생명을 앗아가려는 죽음과의 싸움은 상상만 해도 두렵고 이기기 힘든 싸움이란 것을 미리 알기에 더 버겁고 더 비관의 늪에 빠질 수 있겠다. 하지만 이어령 선생님은 죽음을 마주하면서도 남을 이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인생의 이야기들이 많으셨고 그 이야기들을 정리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마지막을 택하신 것을 보면 그의 의연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가 이제 끝나나 했더니 어느새 전쟁이라는 새로운 이슈가 우리 마음을 무겁게 한다.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마지막 수업>을 들고 나온 것에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삶이 있기에 죽음도 있는 것이고 죽음과 삶은 인간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는.
선생이 얘기 하셨듯이 “죽음의 자리는 낭떠러지가 아니라 고향이다”라는 말을 되새기며 마지막 삶의 순간에도 한 시대의 커다란 지성인의 꼿꼿한 모습을 보이시고 가신 그분의 이야기를 들어 보길 바란다. 어느새 봄기운이 가득하다. 새봄이 주는 삶의 충만을 느끼시길!
이현영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