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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국 칼럼] 혐오시대 갈등 해소법

[2023-04-03, 17:39:21] 상하이저널
코로나 시대 집에서 비대면으로 강의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만큼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도 많아졌다. 아내와 아들, 그리고 나까지 셋 다 집에 있다 보니 가족 사이에 이런저런 갈등이 생긴다. 갈등은 서로 엮일수록, 관계가 가까울수록 깊어지기 마련이다. 

나와 아내가 직장 다닐 때는 적(敵)이 가족의 밖, 그러니까 직장과 사회에 있었다.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가족들에게 예기하며 풀었다. 가족 간에 갈등할 일도, 시간도 없었다. 오히려 밖의 갈등을 풀면서 관계가 돈독했다.  


“이유 없이 혐오하는 시대다” 

내가 직장 초년병이었던 시절만 해도 갈등이 극심하지 않았다. 이유는 많다. 우선 자리에 비해 사람이 모자라던 시절이었다. 기업은 성장 일변도였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지 않았다. 누구나 종신 고용이 보장됐다. 나가려는 사람을 붙잡긴 했어도 나가라고 하는 법은 없었다. 

서열주의 문화도 갈등하지 않았던 이유였다. 위만 보로 달렸다.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복종했다. 머리를 굴리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내적 갈등을 하지 않았다. 그래야 되는 줄 알았다.

기본적인 삶의 조건이 갖춰지면서 남과 비교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갈등 요인이 생겼다. 배고픈 것보다 배 아픈 게 더 힘들다. 누가 연봉을 얼마나 받는가, 그것은 과연 정당하고 공정한가, 왜 당신이 나보다 더 큰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는가, 내가 그것을 용인해야 하는가. 사람들은 갈등하기 시작했다. 

이젠 그야말로 갈등의 전성시대다. 지역 간, 세대 간, 계층 간 갈등은 물론 같은 목표를 가지고 나아가야 할 집단 안에서도 각종 이해득실로 갈등한다. 아니 이유 없이 혐오하는 시대다. 

“갈등을 회피하면 변화와 혁신이 어렵다”

갈등은 피할 수도 없거니와, 피하기만 해서 될 일도 아니다. 화목과 단합을 핑계로 유야무야 넘어가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한다. 덮어놓는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물에 불순물이 있으면 일단 휘저어서 눈에 띄게 해야 한다. 그래야 걷어낼 수 있다. 갈등을 수면 위로 띄워 올리려면 토로해야 한다. 

갈등을 회피하면 변화와 혁신이 어렵다. 변화를 만들어내려면 그것을 수용하는 쪽과 그렇지 않은 쪽과의 갈등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갈등을 외면하면 변화와 발전을 위한 계기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귀찮고 골치 아프더라도 갈등을 대화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소통으로 풀어야 한다. 

가장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정보가 막혀 있거나 정보를 가진 사람끼리만 쑥덕거리면 갈등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헐뜯기와 뒷담화가 성행하고, 헛소문과 유언비어가 기승을 부리며, 흑백논리와 편 가르기가 활개 친다. 그럴수록 갈등은 더욱 증폭된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의 봉합은 병을 키운다”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는 바탕 위에서 유연하고 개방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까 누구나 자기 의견을 개진하고 자유롭게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갑론을박 과정을 거쳐 갈등의 원인을 찾아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의 봉합은 병을 키우고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다만, 서로의 의견을 펼치는 대화와 타협의 과정이 감정과 자존심 싸움이 되지 않도록, ‘모 아니면 도’ 식의 치킨게임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갈등을 풀기 위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서로 배려하는 문화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런 문화에서는 구성원들이 가치를 공유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이 무엇이고,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는 이렇게 행동하자’는 것을 암묵적으로 합의한다. 이런 문화에서는 구성원이 서로에게 관심이 많을 뿐 아니라 서로를 잘 파악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각자의 입장 차이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어려움에도 깊이 공감한다. 당연히 갈등이 생겼을 땐 양보와 합의를 통해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된다. 

“말이 극단에 서면 위험하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나를 있는 그대로 내보이면 상대가 나를 알 수 있다. 알게 되면 이해하고 공감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측 확률도 커진다. 상대를 알 수 없을 때 불신이 깊어지고, 이런 불신이 갈등을 잉태한다. 

자신을 진솔하게 보여준다는 전체 위에서 허심탄회하게 대화해야 한다. 허심탄회한 대화는 솔직하게 말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잠시 내려놓고 상대 얘기를 들으며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갈등 해결을 위해서는 균형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세상 말에는 양극단이 있다. 찬성이 있으면 반대가 있고, 낙관이 있으면 비관이 있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긍정과 부정이 엇갈린다. 어떤 사람은 위기라고 평가하고 또 다른 사람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말이 극단에 서면 위험하다. 그것은 퇴로가 없다. 극단은 또한 다른 극단을 모두 적으로 만든다. 갈등이 극에 이르고 편견과 차별을 넘어 혐오를 불러일으킨다.

균형을 잡는다는 건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이기도 하지만, 공정하다는 뜻도 내포한다. 균형 잡힌 말을 하는 사람은 불편부당하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려고 노력한다. 시각이 객관적이다. 개인적 욕심과 편견이 끼어들면 이미 균형을 잃는 것이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지도자의 역량은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책에서 정치인에게 열정, 책임감, 균형감이 필요하다고 했다. 균형감 없는 열정과 책임감은 맹목적 확신과 독선적 주장을 불러온다. 균형감을 가진 사람은 열린 자세를 견지한다. 어느 한 족이 모두 옳고 다른 한쪽이 모두 그른 경우는 없다고 생각한다. 7대3, 6대4가 있을 뿐 10대0은 없다고 전제한다. 그렇다고 5대5의 중립을 주장하지도 않는다. 치우침은 있을 수밖에 없지만, 미리 결론을 내놓고 그것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상대 진영의 목소리에 귀 닫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다. 경직되지 않고 유연하다. 그런 열린 자세가 말의 중용을 낳는다.

세상은 선택을 강요한다. 우리 보수와 진보, 이상과 현실,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황한다. 그럴수록 균형 잡힌 말이 필요하고, 그 값어치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지도자의 역량은 무엇인가. 나는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갈등을 조정하는 사람인가. 조장하는 사람인가. 

-<결국은 말입니다(2023)> 中


강원국

대우 김우중 회장이 전경련 회장직에 오르던 1988년 스피치라이터로 살기 시작해, 김대중 대통령 연설비서관실 행정관,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으로 8년간 대통령의 말과 글을 쓰고 다듬었다. 인생 후반전, 출판사에 몸담으며 <대통령의 글쓰기>, <회장님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 <나는 말하듯이 쓴다>, <어른답게 말합니다>, <결국은 말입니다>을 펴냈다. 2020년부터 KBS1라디오 ‘강원국의 말 같은 말’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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