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살다보면 한국에서 보다 더 자주 이사를 하게 된다. 이방인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임차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느 곳에서든 정을 붙이고 산다는 것이 주는 안정감은 그렇지 못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평안을 준다. 반면, 언제 떠나야 할지 모르고 사는 삶만큼 불안한 삶은 없을 것이다.
비단 이사뿐만 아니라 회사와의 노동계약에 있어서도 정해진 주재년수가 없는 경우, 혹은 연장계약을 하는 경우, 매년 얼마나 또 연장될지, 혹은 연장이 결렬될지를 몰라 마음이 불안해지기도 한다. 홀홀단신의 몸이라면 그 불안감은 덜하겠지만, 부부가 같이 와 있는 경우 거기에 아이들이 함께 와 있는 경우, 게다가 그 아이가 중고등학생인 경우, 재외국민 특례혜택이 해당되느냐 마냐의 기로의 있는 경우는 그 불안도가 더 커지기 마련이다.
한국에서라면 선택할 일이 적었을 텐데, 혹은 조금 더 안정된 선택지가 있었을텐데… 라고 생각하다 보면 해외에서 일하고 거주하면서 마주하는 많은 스트레스들과 불안한 마음들로 인해 괴롭기도 하다. 스트레스와 불안함과는 조금 다른 감정인 슬픔 또한 함께 찾아온다. 내가 살던 곳과 이별하는 마음은 마치 오랜 친구와 이별하는 것과 같은 슬픔을 남긴다. 특히, 내 것에 대한 애착이 많은 나로서는 모든 헤어짐이 항상 힘들다.
나는 7년만의 이사를 앞두고 있다. 상하이에서의 4번째 이사이다.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좋은 임대인을 만나서 7년간 내집처럼 지내다가 이사하려니 이 집 구석구석 남아있는 우리 식구의 흔적들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 7년간 폭풍 성장기를 겪은 아이들이 키를 재 놓은 한쪽벽이 특히 더 애틋하다. 소파에 앉으면 바닥에 다리가 닿지 않을 정도로 작았던 6살 꼬꼬마는 어느새 13살 중학생이 되어 이제는 내 키만큼 커버렸다. 특히나, 코로나의 3년을 이 곳에서 보냈으며 특히 2022년 4월의 지독한 상하이 봉쇄를 이 단지에서 보냈다. 다른 단지도 그랬겠지만, 봉쇄시절을 함께한 동지들에 대한 마음은 특별히 애틋하다.
이제 며칠 있으면 몇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곳에서 매일 아침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래봤자 상하이 안이고, 또 그래봤자 민항구 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사를 계획하며 내 마음도 이 집에서 함께 포장해서 가져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인생은 가다가 멈추는 여정의 연속인데, 가지 않고 멈춰 있고 싶기만 한 까닭에 이사를 앞두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가야 할 때는 열심히 그 여정을 가고, 멈춰야 할 때는 멈춰 있는 곳에서 마음을 다하여 즐겨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집이 아닌 이 곳에서, 내 나라가 아닌 이 곳에서의 멈춤은 뿌리를 내릴 수 없는 일시적인 멈춤이기에 멈춰있는 동안에도 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또 언제 떠나야 할 지 몰라 마음 불안해하게 된다.
언젠가는 나도 마음 편하게 뿌리내리고 살 날들이 오기를 기다리며 차곡차곡 이사짐을 정리해본다.
에리제를 위하여(khe30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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