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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발표(출처: 네이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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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계절이 바뀌긴 할 것인지 의문이 들도록 뜨겁고 긴 여름을 보내고, 도대체 찬 바람이 불긴 할 건가 의문이 드는 가을을 보내는 동안,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낭보를 들었다. 아시아 여성작가의 첫 수상이어서 더 뜻깊은 쾌거였다.
다시 봐도 주옥같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강연은 ‘질문’으로 시작해서 연쇄적으로 ‘질문’들이 이어지며 그의 31년 작품세계를 구성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나의 장편소설을 쓸 때마다 나는 질문들을 견디며 그 안에 산다. 그 질문들의 끝에 다다를 때-대답을 찾아낼 때가 아니라-그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 그 소설을 시작하던 시점과 같은 사람일 수 없는, 그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변형된 나는 그 상태에서 다시 출발한다.”
열 두 살에 광주 사진첩을 본 뒤로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소년이 온다>라는 작품으로 만들어지고, <작별하지 않는다>를 출간하기까지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라는 질문 사이의 긴장과 내적 투쟁이 글쓰기를 밀고 온 동력이었다고 작가는 말한다.
비단 작가뿐이랴? 뛰어난 업적이나 남다른 성취를 일구는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 사람인데, 이것은 끝까지 답을 찾고 싶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한동안 그릿(GRIT)이라는 단어가 유행이었는데, 이 또한 끝까지 찾고 싶은 질문을 가슴속 깊이 품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만드는 것은 이런 질문들이 아닐까?
더구나 Chat GPT와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가 되면서 질문은 더욱 더 중요해졌다. 질문의 수준과 질에 따라 대답의 수준과 질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최근 카이스트가 자기소개서 1번 문항으로 ‘평소에 가지고 있던 남과 다른 자신만의 질문에 대해 작성하고, 이 질문을 하게 된 이유를 기술하라’고 요구한 것도 질문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좋은 질문은 무엇일까?
첫 번째, 관련 당사자 모두에게 유용한 질문이어야 한다.
두 번째, 질문한 사람이 끝까지 답을 찾고 싶은 질문이어야 한다.
세 번째, 질문을 받은 사람의 가슴이 울리면 좋은 질문일 것 같다.
한강 작가가 노벨상 수상 첫 기자회견을 앞둔 시점에 한국은 계엄이 선포되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광화문 거리를 응원봉 빛으로 밝혔다. 비상계엄은 ’대통령의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라며, 민주주의를 가장한 폭거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는 대통령의 담화는 더 많은 시민들을 분노케 했고, 결국 탄핵이 이루어졌다. 우리는 여기서 질문해야 한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고.
“쏟아지는 빗줄기, 제 팔과 종아리를 적시는 습기를 보면서 문득 깨달았습니다. 저와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이 모든 사람들, 그리고 건너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나’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요. 저와 마찬가지로 그들 모두 이 비를 보고 있었습니다. 제 얼굴에 촉촉이 젖은 비를 그들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1인칭 시점을 경험하는 경이로운 순간이었습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 중 일부다. 우리는 각자 모두가 1인칭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자각이 민주주의의 출발일 것이다.
한강 작가가 여덟 살 때 쓴 첫 시집에서 ‘사랑은 어디 있을까?’, ‘사랑은 무얼까?’라고 시작된 질문이 작가에게 근원적인 작품세계의 배경이 되었듯이, 나의 정체성과 삶의 근간을 이루는 질문은 무엇인지, 가슴 깊이 생각해 보는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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