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소개로 우리 집에 온 그 아인 한국에서 6학년 1학기를 마친 자그마한 소년이었다. 유학에 대한 어떤 기대나 계획도 없이 그저 어떨 결에 부모의 의견에 동의하고 마치 잠깐 놀러 온 듯한 기분으로 온 것이 틀림 없지 싶었다. 한번도 집을 떠난 본 적이 없는 아이는 시간이 지나고 하루하루 날짜가 지나면서 현실을 느끼는 듯했다. 새로운 곳 식구 모두가 어린 아이 에게는 낯설기만 한데 오자마자 바로 중국학교에 입학을 했으니(지금이야 힘들지만 그때만 해도 로컬학교에 입학하기가 쉬웠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다가온 현실이 어린 아이에겐 참 많이 벅차고 힘들었겠구나 싶었다.
스스로 움츠러들고 항상 눈가에 눈물이 촉촉히 젖어있는 아이에게 더 이상 감상에 젖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안쓰러운 마음은 감추고 모질게 한마디씩 하곤 했다. 물론 부모가 아니고 자식이 아니지만 우린 때론 얼굴을 붉히기도 또 폭풍 수다를 떨기도 하며 어느새 한 식구가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입학을 하고 1년 어엿한 청년으로 자란 이 녀석 올 여름 드디어 입영 날짜를 받았다.
마침 한국에 나갈 일이 있어 입대 전 한국의 젊은이의 대명사 홍대 입구에서 만나 함께 식사를 하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서로가 그 동안의 이야기가 이렇게 많다니 웃음이 났다. 부모님의 초대를 받아 집을 방문해 함께 식사를 하면서 곧 입대할 아들 앞에서 길러준 엄마란 말에 가슴이 뭉클했고 사실 까까머리를 보는 순간 눈물이 핑~돌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건강하고 건실한 청년으로 성장한 모습이 대견하고 감사했고 무사히 전역해서 자기의 꿈을 향해 지금처럼 잘 해 나갈 것을 기대하며 앞으로 우리 나라를 성실하게 이끌어갈 일원으로 충분함을 믿어 의심치 않게 했다.
병원에 가면 모두가 환자로 보이고 교도소에 가면 죄인들로 보이고 이래서 환경이 중요 하다고들 하나보다. 시댁이 서대문쪽이다 보니 이번 한국에서 주로 홍대 근처를 많이 가게 됐다. 젊은이가 줄어든다고 하지만 그 거리는 온통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예전보다 외국인들도 많았고 자유분방한 모습들이 약간은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내가 중국에 너무 오래 살았나 싶은 마음이 들도록 어색했다.
진한 흡사 분장과 같은 화장, 문신, 거리 구석구석 남녀가 모여 담배를 피우고 시끄럽고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 나라의 미래가 있을까 하는 염려가 생겨 중얼거렸더니 아들이 옆에서 말 조심 하라고 잘못하다가 봉변 당한다고 한다. 화가 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마음에 남편에게 문자로 투덜대니 그러니 왜 거기를 갔냐고, 도서관에 갔다면 생각이 달랐을 거라고 한다. 아무튼 난 무거운 마음으로 상하이로 돌아왔다.
돌아와 며칠 후 지인들과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국에서 아들과 같이 한달 동안 아들과 학원을 다녔는데 젊은이들이 바쁜 와중에도 어찌나 열심들인지 한국의 미래가 어둡지는 않다고 느꼈다는 말을 듣는 순간 쓴 웃음과 동시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래, 이곳에도 그곳에도 어디에나 열심히 바른 정신으로 살아가는 젊은이가 있다. 어디에나 양면성은 가지고 있는데 정말 어느 곳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지 순간 퍼뜩 정신이 들면서 지금도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빠르게 변해가는 현대를 살아가면서 기다림과 신중함 보다는 눈앞에서 보이는 것에 연연하고 작은 일에 절망하기도 하고 성급한 판단을 하고 그것이 때론 극단적인 선택으로 가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 나라의 미래가 어둡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혹 우리의 문제가 아니고 나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어느 곳에서 어디를 바라보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칭푸아줌마(pbdm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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