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라고 뒹굴뒹굴하다가 적당히 일어나 밥을 짓고, 멸치육수를 우려 플라스틱 된장 통에 얼마 남지 않은 장을 긁어 모아 된장국을 끓였다. 감자인 줄 알고 두었던 봉지를 열어보니 막 윤기 날 때 사두었던 연근이었는데, 움푹듬푹 변해가는 참이었다. 얇게 썰어 튀겨내면 아이들 입에 쏙쏙 들어가는 맛있는 튀김이 되었을 텐데 나의 무심함을 탓해본다. 부엌의 한쪽 벽엔 비닐봉지가 또 산을 이루었다. 밖에서 받아온 비닐봉지를 되가져가 과일•채소를 담아오고, 물건을 날라와도 닳도록 쓰다 소진하긴 어려운 까닭으로 우리 집엔 이 물건이 항상 넘쳐난다.
상하이에서 자리 잡은 지 꽤 된 지인은 중국 공항에 도착했을 때 빨간 비닐봉지가 바람 따라 공중에 휘돌아나는 생경한 풍경이 중국에서 각인된 첫인상이었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식료품용 종이 포장 대신 얇은 비닐에 만토우(馒头)나 빠오즈(包子), 김이 펄펄 끓는 옥수수 등 척척 담아 아침을 해결했고, 어딜 가나 비닐 인심이 후했다. 그런데 난감한 것은 정말 얇기도 얇아서 담기는 내용물의 무게를 견뎌내질 못하고 흘러내리듯 찢어지기도 잘했다.
플라스틱의 질량도 비슷해서 물건을 보관하다 보면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조각조각 부서지곤 했다. 의류도 싼 맛에 골라와 입어보면 어딘지 모르게 불편하고, 다른 옷과 맞춰 입기 어려워 옷장에 모셔놓다 결국 버리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무렵 나는 종이와 플라스틱을 모았다가 한 달에 한 번 재활용품 할아버지에게 팔았는데, 커다란 수거용 자루에 추가 달린 휴대용 저울을 넣어 다니던 할아버지는 무게를 달아 10원 언저리의 값을 치러 주셨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지구를 살리는 일에 동참한 것 같아 좋았다.
지구의 어느 한켠엔 쓰레기로 이룬 산에서 재활용 쓰레기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삶이 있고, 또 다른 켠에선 쉽게 소비하고 많이 버리는 삶이 있다. 의류만 하더라도 전 세계적으로 1초에 1톤씩의 옷들이 처리된다고 하니 요즘 대세인 밀라논나 같은 인기 유튜버의 방송을 찾아보면 가성비 좋은 의류구매와 매칭 팁, 오래 보관할 수 있는 관리법을 가르쳐주니 조금만 더 시간을 들이고 신경 쓴다면 환경 보존과 함께 패셔니스타도 될 수 있겠다.
보글보글 끓어가는 된장찌개의 열기에 그 옆에 자리 잡고 있던 소금 통도 어느새 불 쪽으로 조금 휘어져 있다. 아차 싶다. 얼마 전에 ‘플라스틱 바다’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는데, 바다로 흘러든 플라스틱은 물고기들과 바닷새들이 삼켜 위장에 차곡차곡 쌓이고, 그물의 찢긴 틈이나 고무줄이 목에 걸린 물개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또 세상에 얼마 남지 않은 아름다운 족속 대왕고래도 거대 비닐봉지를 삼켜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어디 그뿐이랴. 바다 위를 표류하는 미세 플라스틱에는 세균이 잘 붙어 그것을 먹은 바다 생물들의 몸에 퍼지고, 먹이피라미드를 따라 인간의 식탁에 올라 먹이사슬은 오염되고 병들어간다고 했다.
상해도 친환경화를 위한 노력을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와 신에너지 차량 증가, 그 외 정책으로 전에 없던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다. 또한 분리배출•수거도 2년이 되었고, 종이 빨대와 썪는 비닐의 사용, 장바구니 휴대도 늘었다. 쓰레기를 길에 버리지 않는 문화가 정착되고, 배달 문화의 부산물인 방대한 양의 상자와 포장재의 남용도 합리적 기준에 의해 규제 된다면 상해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청정도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여울소리
<아줌마 이야기> 코너가 올해부터 <허스토리 in 상하이>로 바뀌었습니다. 다섯 명의 필진들이 상하이 살면서 느끼는 희로애락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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