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대표하는 화가 장대천(张大千)은 서양에서는 ‘동방의 필(笔)’이라 불리는 거장이다. 국가 유산을 지키기 위해 희생하는 애국자, 심지어 피카소의 업적과 기록을 깬 화가기도 하다. 장대천은 젊은 나이에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의 그림 기술과 고유하면서도 독특한 색감이 그가 거장이 되기 위한 발판이 됐다. 문화와 역사적 가치를 지닌 중국의 돈황 문서를 지키는 것에 헌신해 전세계적으로 존경받는 화가가 됐다. 작품 ‘황산문필봉(黄山文笔峰)’은 당시 장대천이 상하이 기행 당시의 기억을 바탕으로 그린 걸작이다. 또 대표작인 ‘장강만리도(长江万里图)’는 무려 20미터가 넘는 종이에 그린 작품으로 자국의 민족성과 역사를 담고 있다.
(장강만리도)
(황산문필봉)
장대천은 처음에 산수(山水), 화조(花草), 인물(人物), 어충(鱼虫) 등 다양한 분야의 국화(나라의 정서를 담은 그림)를 즐겨 그린 것이 아니며, 전공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모작하는 것을 바탕으로 그림실력을 발전시켜왔고 전세계적으로 몇 안 되는 원작보다 가치가 높은 모작을 그려낸 화가였다. 하지만, 그가 모작을 고집해서 그렸던 이유는 “무지한 재벌들이 신성한 작품을 사는 것은 안 된다”는 목적에서였다. 이는 현재 많은 사람들이 그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다.
장대천은 이후에 국화를 그리는데 전념했다. 또 산수, 화조, 인물 등을 완벽하게 묘사했다. 무엇보다도 그의 그림에는 전례 없던 풍격을 자아내 많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고 물감을 퍼트려 몽롱하면서 아름다운 느낌을 주는 자신만의 ‘포수포묵(泼水泼墨)’이라는 화법을 가지고 있다. 모작부터 국화, 자신만의 고귀한 색깔까지 지닌 화가 장대천은 2011년 세계 미술시장에서 낙찰가 총액 한화 5700억 원으로 피카소 낙찰가4140억원를 넘어서기도 했다. 그의 작품들은 피카소를 뛰어넘어 끊임없이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판매되고 있다.
그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이유는 이 뿐 아니다. 돈황 지역에는 우연히 동굴을 청소하던 이가 발견한 역사적으로 의미가 큰 돈황문서가 있다. 돈황문서에는 고대 한반도의 역사가 담겨 있어 한국에서의 관심 또한 크며, 동서 불교문화의 역사를 이어줄 수 있는 역할이 있어 서양에서도 매우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당시, 돈황문서의 이러한 진가를 알아본 여러 탐험가들은 이를 훔쳐 자국에 파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 이때 장대천은 어린 나이의 성공 덕분에 누릴 수 있었던 풍족한 삶을 포기하고 돈황 문서 지키기에 나서 돈황의 수호자 역할을 하게 됐다.
그는 매우 긴 시간 동안 중요 문서를 지키며 오랜 기간 다져온 실력으로 300점이 넘는 돈황 벽화의 모작을 그려 역사의 기록을 보존하려 했고, 자신의 나라와 예술에 헌신했다. 이는 장대천이 중국 국내에서 단지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가 아닌, 그 이상의 대우와 존경을 받는 화가가 되게 만들었다. 결국, 장대천은 실력부터 애국심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았던 중국이 낳은 최고의 화가 중 한 명이다.
학생기자 나준열(상해한국학교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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