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이미 부정적인 뜻을 내포한 단어가 돼 버렸기에 온라인상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싸우지만 현실에서는 언급을 꺼린다. 여러 집단을 칭하는 말들과 혼용돼 정확한 뜻을 말할 수 있는 이가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페미니즘의 정의는 사실 간단하다. ‘남성과 여성의 동등함’을 주장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나아가 성별로 인한 차별을 멈추자는 뜻을 지닌다. 의미상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현재의 ‘페미니즘’, ‘페미니스트’는 왜 논란이 되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무엇이든지 제대로 알려면 역사를 알아보는 것이 정석이다. 페미니즘이라 일컫는 사회 운동이 언제 시작됐고,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까지 오게 됐는지 살펴보자.
여성인권의 파도
서양의 본격적인 페미니스트 운동은 보통 4개의 ‘파도(waves)’로 구분한다. 우리말로는 1, 2, 3, 4 세대 페미니즘이라 의역되는데, 어떤 상황, 문제를 주로 해결하고자 했는가에 따라서 세대가 나뉜다.
1세대: 참정권과 법적 불평등
여성 참정권, 여성 교육권, 그리고 더 나은 근로 조건을 추구했던 19세기~20세기 초 서양에서의 페미니스트 활동을 ‘1세대 페미니즘’이라 칭한다. ‘1세대’라는 말은 기본적인 정치적 불평등을 넘어 사회적, 문화적 불평등에 대항하는 ‘2세대 페미니즘’과 구분짓기 위해 생겼다.
미국의 경우,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은 여성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노예제도와 금주제의 폐지를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이 노예제도 반대 운동은 후에 페미니즘과 이념적으로 양립할 수 있는 명분이 됐다. 1840년, 두 명의 여성이 런던에서 열린 세계 노예 반대 협약에 ‘여성이어서’ 입장을 거절당했다. 이들은 분개하며 여성 독립 선언서를 초안, 여성 권리 대회를 열며 본격적인 참정권 운동을 시작했다. 보수 기독교 단체부터 급진주의자까지, 광범위한 참여자들의 지지와 협력으로 미국 여성들은 투표권을 얻게 된다. 1974년, 여성의 투표권을 명시한 수정 헌법 19조의 통과로 미국에서의 1세대 페미니즘은 끝난 것으로 간주된다.
2세대: 문화적 불평등, 성 역할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이르는 시기의 페미니스트는 ‘2세대’로 통칭된다. 1세대가 참정권을 비롯한 절대적 권리에 중점을 뒀다면, 2세대는 문화적 차별 종식에 집중했다. 이 시기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에게 생활에 깊게 박힌 성차별적 권력 구조를 이해시키려 힘썼다.
1963년 베티 프리댄의 <여성성의 신화(The Feminine Mystique>는 여성들이 대학 졸업 후 가정주부로 전락하며 느끼는 불만과 상실을 담았다. 프리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필수직에 종사하던 여성들이 전쟁 후 가정으로 돌려보내진 과정을 조사하고, 여성 역할에 대한 인식 변화를 주도한 세력을 평가했다. 프리댄을 시작으로 1970년대에는 글로써 성차별 문제를 다루는 페미니스트가 많아졌다. 케이트 밀렛은 <성의 정치(Sexual Politics)> 에서 남성 작가들의 편견을 통해 “성은 정치이고, 정치는 권력 불균형”이라 강조했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성의 변증법 (Dialectic of Sex)>에서 남성의 지배가 "기록된 역사를 넘어 동물의 왕국 자체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주장했다.
여성 해방 운동이 활성화되며 새로운 관점을 가진 페미니스트들이 등장했다. 그 중 벨 훅은 가장 억압받는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목소리의 부족, 인종과 계급 불평등에 대한 강조의 부족 및 여성 차별 문제의 거리감을 비판해 주목받았다. 헬렌 레디의 "I Am Woman", 존 레논의 "Woman is the Nigger of the World” 등 70년대 페미니스트 곡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3세대: 다양성, 성적 자유
1990년대부터 2000년대의 페미니스트는 ‘3세대’라 불린다. 기존 2세대가 백인과 중산층 이상의 여성들로 주를 이뤘다면, 3세대는 인종, 경제적 수준을 배제하고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페미니즘을 바라보려 노력했다.
3세대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피임권을 요구했다. 여성들이 피임약을 사용해 아이를 낳을지 본인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피임할 권리가 남성으로부터의 완전한 경제적 독립을 위해서 필수라고 본 것이다.
이들은 더 나아가 여성의 성적 자유가 사회적으로 수용될 수 있도록 투쟁했다. 예로부터 사회 규범에 의해 남성은 여러 사람과 성관계를 가져도 아무런 비난을 받지 않았다. 성 평등을 추구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도 원한다면 성적 해방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4세대와 각종 분파
현재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을 ‘4세대’라 정의 내린다. 2010년경에 시작된 4세대는 SNS를 주요 창으로 활동하며 여성혐오, 성희롱, 폭력을 규탄한다. 중점적으로 다루는 문제로는 직장 괴롭힘, 캠퍼스 성폭행, 강간 등이 있다.
2012년 델리 갱 강간, 2017년 웨스트민스터 성 추문 등 여성과 소녀들을 학대, 살해하는 사건들이 4세대의 활동에 박차를 가했다. #미투 운동 같이 해시태그를 사용한 SNS 캠페인이 번져 나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를 지지하고 정치권에서도 해결책을 논의할 수 있게 했다.
페미니즘이 자유주의 페미니즘, 급진적 페미니즘, 에코 페미니즘 등 다양한 분파로 갈리며 같은 페미니스트여도 상당히 다른 견해를 취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기존의 사회 구조를 유지하며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한다면 급진적 페미니즘은 체제를 뒤엎고 남성 우월주의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대 분류의 정당성
페미니즘을 ‘세대(waves)’로 분류한 것이 부적절하고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페미니즘은 '세대' 사이에서 후퇴하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한 가지 예로 1960~90년대 미국에서 페미니즘이 서서히 사회에 흡수된 것을 들 수 있다. 이 기간은 따지자면 2세대와 3세대 페미니즘에 걸쳐있지만, 어느 세대에 속하는 지와 상관 없이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고등교육을 마칠 수 있게 됐고, 다양한 직업군에 진출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또한 페미니즘을 세대로 분류하는 것이 극도로 미국과 영국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소개한 ‘1세대 페미니즘’은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의 2세대 페미니즘이다. 미국과 영국의 2세대 페미니즘은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인들에게는 3세대에 해당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 범주에 포함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학생기자 이나영(SAS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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