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장 재량 껏” 학폭위 실효성 없어 운영 않기로
“학교폭력의 예방 및 대책에 관련된 사항들을 심의하여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을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함을 목적으로 한다.”
상해한국학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규정 제1조이다.
상해한국학교 학부모 A씨는 “고등학생인 아이가 학교에서 억울한 피해를 입었다”고 학교에 호소했다. 동시에 동아리 내부 폭력성과 비민주적인 회의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비민주적인 회의라는 주장은 규정이 없어서 해결방법이 없고, 폭력성 조사는 학생부에서 맡는다”라며, A씨가 제기한 사안에 대해 학생 조사가 진행됐다.
그런데 담당하는 기구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학폭위)가 아니라 선도위원회(이하 선도위)였다. A씨는 “회복과 해결을 바라며 한달 넘게 준비하고 선도위에 참석했다. 그런데 참석한 이후에야 알게 됐다. 선도위원들은 이 일은 선도위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읍소를 하니 심의를 열었고, 상처가 회복되지 않은 학생에게 관련 학생들과의 ‘관계회복’이 교육적인 조치임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고 토로했다.
학생 인권 보호 VS 올바른 선도
학폭위가 학폭 예방과 대책 사항을 심의해 “학생 인권 보호”에 초점을 맞춘 기구라면, 선도위는 학칙에 의거해 “학생을 올바르게 선도”하기 위한 절차를 규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선도위와 학폭위는 목적이 다르다. A씨는 “그래서 개인 명예와 인격에 손상을 입어 아프다는 학생에게 올바른 선도 방법은 이것이라는 조치를 내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학생부에서 학폭은 피해자중심이라고 한 말과 달리 선도위 과정은 그렇지 않았다”고 A씨는 주장했다.
모든 학폭은 선도위에서?
A씨가 이 문제로 학교를 찾았을 때 학생부에서는 “상해한국학교는 학폭위가 없고, 모든 학폭 사안은 선도위에서 맡아 심의한다”고 했다. 2019년부터 학폭위 기능이 학교에서 관할 교육청으로 이관되면서 해외 한국학교는 ‘학교장 재량’에 맡겨졌다는 것이다. A씨는 학교규정집을 내밀며 선도위와 학폭위 규정 중 어느 것을 적용하는지를 물었고, 학생부는 “두 규정 모두 적용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학폭위 규정에 나온 ‘가해학생 조치별 적용 세부기준’ 조항에 실린 심각성, 지속성, 고의성 등을 정량화해서 평가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나 선도위 공식 입장은 또 달랐다는 것. 선도위 심의를 마친 후 A씨는 학생부 설명과 달리 규정대로 적용되고 있지 않다고 항의하자 선도위에서는 “모든 학생사안을 선도위에서 다루고 있으며, 선도규정에 나와 있지 않은 사안 경우 학폭위 규정을 참고해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실제 상해한국학교는 최근 3년간 학폭위가 열린 적이 없다. 학폭위를 운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 전병석 교장은 “학폭위의 조치사항(징계)에 실효성이 없고, 위원 구성도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회의록 공개불가! 전례 없기 때문?
심의 결과가 나온 후 A씨는 조치결과는 물론 과정과 절차 모두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 그때마다 학교측에 요구했다. 그런 결정을 내린 사유가 명시된 ‘결정문’을 달라는 요구에 학교는 구두로 통보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고 한다.
답답한 A씨는 한국학교 학폭위 규정에 나온대로 회의록 공개를 요청했다. 이번에도 ‘비공개원칙’, ‘전례없음’, ‘프라이버시권 보호’ 등을 이유로 공개 불가하다고 답변해 더욱 납득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여러 차례 요구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보내온 회신은 일관됐다는 것. A씨는 사건 당사자가 알아야 할 권리라고 주장하고 교육부에 자문을 구했다.
교육부 “학교장 단독 결정 사안 아니다”
이에 대해 교육부 재외동포교육담당관은 “한국의 학교폭력예방법이 바뀌어서 위원회를 교육청에 두도록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전과 다름없이 동 법령의 준용은 학교장의 권한이라 하겠다”라며 “물론 학교장의 단독 결정이 아니고 학교운영위원회, 법인이사회 등에서 학교 자체 규정을 정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된다”고 답변했다.
또한 회의록 공개에 대해 교육부에서는 "(심의에) 참여한 선도위원이나 참고인 등의 권익이 침해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관련 학생이나 보호자에게 회의록이 공개될 수 있도록 선도위원회 등에서 협의해 줄 것을 상해한국학교장에게 권고했다"고 밝혔다.
이사회 “운영위 논의조차 없는 것, 규정에 어긋나”
법인이사회도 같은 의견을 보였다. 박상민 부이사장은 “(모든 학폭 사안을) 선도위에서 운영하는 것이 적법하다는 것에 대한 동의를 얻은 것이 아닌 학교 자체적인 결정이다. 학교장의 판단으로 선도위에서 운영한다 하더라도 이사회와 운영위에 논의조차 하지 않는 것은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소주•무석•북경 한학에는 학폭위 있다
가까운 소주, 무석, 북경한국학교 등은 현재 선도위와 학폭위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학폭위가 교육청으로 이관된 것과 무관하게 여전히 별개로 운영되고 있다.
또 상해한국학교가 학폭위를 운영하지 않는 이유 중에는 해외지역이라 전문성을 갖춘 위원들을 구성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상해한국학교 규정에 따르면, 선도위는 교사 5인으로 구성된다. 반면, 학폭위는 교사, 학부모, 영사, 경찰공무원, 변호사, 청소년 보호 지식 경험을 가진 자 등 5~10인이 위원으로 참여한다. 상하이는 관련 분야 전문가들 찾기 어렵지 않다. 교사 5인으로 구성된 선도위가 학폭위보다 전문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국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는 10~50인으로 구성된다. 청소년보호활동과 학교폭력 전문지식을 갖춘 다양한 전문위원들의 심의를 통해 결정된다.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을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을 목적으로 하는 학폭위의 판단과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해외 한국학교, 폭력인지감수성 길러야
한국사회는 최근 폭력에 대한 인식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학생들은 폭력인지 모르고 저지르기도 하고, 자신이 당한 일이 폭력인지 모르고 지나치기도 한다.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반복적으로 위협하고 불편하게 하고 마음에 상처를 주는 행위가 폭력이라는 것을 말해줄 수 있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정서적•심리적 공격에 아파하는 학생에게 “그것은 사소한 것”이라고 하거나, 피해 학생에게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구시대적이다. 같은 맥락에서 ‘인권보호’를 얘기하는 학생에게 ‘학생선도’가 우선이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학폭 예방과 대책에 초점을 맞춘 학폭위, 관계회복을 중요시하는 선도위가 태생이 다르듯 운영도 구분돼야 한다. 상해한국학교는 운영위와 이사회 절차를 거친 학폭위/선도위가 운영돼야 하고, 전문성을 갖춘 다양한 위원들이 폭력사안을 민감하고 공정하게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박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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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석 교장은 “학폭위의 조치사항(징계)에 실효성이 없고, 위원 구성도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
와….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