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플랫폼에서 알게 된 작가가 있다. 나는 그를 잘 알았지만 그는 나를 몰랐고, 이제는 알게 된 사이라고나 할까. 그는 유명한 작가였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본업이었던 기자 생활을 1년 반 동안 휴직하고 춘천에 공유 서재를 연, 누군가에게 꿈으로만 그칠 일을 휴직기간 동안 뚝딱 해내버린 직장인들의 워너비였다. 라일락 나무와 파란 지붕이 예뻐 60년 된 폐가를 덜컥 계약한 일부터 그의 추진력은 심상치 않았다. 그 후 리모델링 과정을 세세하게 공유하는 글을 연재했고, 현재는 공유 서재의 일상을 담는 중이다. 독자들도 글의 업데이트에 따라 대리만족을 느끼고 있다. 나 역시 열혈 독자들 중에 한 명이었고, 한국을 방문하면 꼭 그 서재부터 달려가리라 생각했다.
다행히도 한국에 머무는 동안 그곳을 다녀올 수 있었다. 단출하고 담백한 여행을 그렸으나, 현실은 왁자지껄한 나들이였다. 춘천 서재를 다녀오고 싶다는 내 말에 두 동생도 솔깃했다. 회사 휴가까지 낸 동생과 유치원 안 간 다섯 살짜리 조카까지 함께 나섰다. 오래간만에 세 자매 나들이가 되었다. 각자의 일상에서 하루쯤의 쉼표가 필요했던 시기였다. 겨울 춘천의 알싸한 바람을 맞으며 닭갈비와 막국수를 먹고, 새롭게 떠오른 그 지역 명물 감자빵도 맛보았다.
서재는 요즘 춘천에서 뜨고 있는 거리의 작은 골목 안에 있었다. 주말에는 당일 여행객들로 붐비는 곳일 테지만, 막 추위가 시작된 평일 낮이라 한산했다. 문 앞의 간판에서부터 주인장의 감성이 맞아주었다. 정사각형 나무 위에 단정한 손글씨로 써진, ‘첫서재’. 작가의 문장이 떠올랐다. ‘공사를 진행하는 동안 집이 아닌 인생을 다듬는 리모델링을 하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큰 틀의 설계부터 소품 하나하나까지 직접 선정하는 작업을 하다 보니 모든 순간마다 자신의 정서가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고.
서재는 고택의 푸근함과 산뜻함, 힙함이 뭉근하게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어느 자투리 공간 하나 빠뜨리지 않고 다 주인의 신경과 손길이 무수히 닿은 정성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내 취향에 딱 맞는 책들 때문에 더 설레었다. 다른 사람들 집에 가서도 집주인의 책장을 유심히 보는 편이다. 즐겨 읽는 책들, 소장하고 있는 책들을 보면 그 사람도 보이고, 대화의 주제도 가늠이 된다. 이미 글을 통해 친근해진 이 서재에서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들까지 수두룩하게 꽂혀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희열이란.
서재의 대부분의 책들은 주인장이 소장하고 있던 책이다. 판매는 하지 않고, 그곳에서는 얼마든지 읽어도 된다. 그야말로 공유 서재. 주인은 상하이에서부터 찾아온 나를 반갑고도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편안히 마음껏 머물다 가라고 했다. 여러 권의 책을 골라 앉았는데, 정작 한 시간 넘게 창문 넘어 춘천의 오래된 골목 풍경과 하늘만 쳐다보고 온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어떤 버거웠던 마음은 오래된 문짝을 뜯어내 만든 책상 위에 슬그머니 풀어 놓고 왔다.
‘첫서재’는 지금 걷고 있는 길 위에서 아직 서툴러하는 사람들, 새로운 낯선 길을 걸어보려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제공하는 공간이 되고 싶다고 했다. 나와 동생들 역시 첫서재가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조카도 또 가고 싶다고 한다니, 다섯 살 인생에게도 필요한 곳이었나 보다. 꼭 책에 집중하지 않아도 그곳의 공기와 여유와 에너지를 누릴 수 있던 시간, 그래서 그저 그런 여행 아닌 더욱 특별했던 춘천 나들이였다. 앞으로 나에게 춘천이란, 닭갈비가 아닌 첫서재.
레몬버베나(littlepool@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