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로 충전하던 때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은 극도로 꺼리지만, 마음 맞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언제나 설레었고 지치지 않았다. 속상한 일이 있으면 지인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동시에 긍정적인 에너지도 채워왔다. 하지만, 살면서 힘든 순간 역시도 사람 때문이었다. 사소한 오해가 쌓이다가 결국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두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관계가 되기도 하고, 가깝게 잘 지내고 있던 지인의 몇 마디 말이 그날따라 그렇게 서운하게 가슴에 콕 박힐 수가 없었다.
마음 몸살로 끙끙 앓다 보면 세상 인간관계가 다 거추장스럽고 지겹게 느껴진다. 지난해 유독 그런 경험들이 많았다. 사람들과 함께 할 일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크고 작은 마음의 생채기들도 늘어났던 한 해. 그때마다 할 수 있는 건 자책밖에 없었다. 왜 그랬을까, 왜 더 조심하지 않았을까, 왜 더 살피지 못했을까. 그러다 자연스레 건강을 핑계로 칩거 생활에 들어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물결조차 없이 고요히 흘러가는 그 시간들이 참 편했음을 고백한다.
나의 무소식에 사람들은 위챗으로 안부를 물어왔다. 평소에 자주 교류하지 않았던 지인들이 연락을 해 왔고, 살갑게 다가와줬다. 한 친구는 매일매일 안부를 물어오고, 자신의 아픈 지난 이야기를 나눠주기도 했다. 정성껏 써 내려간 장문의 메시지를 읽을 때마다 고마움으로 마음이 따뜻해졌다.
한국에 가 있는 동안에는 같은 학부모로 만난 지인들이 집으로 직접 만든 음식을 여러 번 가져다 주기도 하고, 어느 날은 주문하는 김에 우리 아이들 것까지 시켰다며 치킨을 보내 주기도 했다. 학교에서 아이들 편에 간식을 보내기도 했다.
상하이에서 격리하는 동안에는 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 크리스마스를 외롭게 보낼까 싶어 목소리라도 들어보려고 전화했다며 그렇게 시작한 근황 토크로 그 밤을 훌쩍 보냈다. 그 동안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그 사람들 마음까지 세심하게 헤아리지 못했던 나는 위로받으면서 위로하는 법도 배워나갔다. 사람들을 피해 들어간 동굴 속에서 나는 다시 사람들 덕분에 빛을 느끼고 걸어 나오고 있었다. 상하이로 돌아와 반가운 얼굴들을 하나 둘씩 만나가면서, 다시금 내가 사람들과 함께 그 시간을 나누고 있을 때 비로소 나답고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꾸 무언가를 같이 하고 싶어졌다.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며 이제는 외면하지 않겠다고 어느 날 밤, 생각했다.
사람은 그 자체로 기적이에요.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마음 안에 그 한 사람을 들여놓는다는 것은 더 기적이지요.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 또한 황홀합니다. 혼자서는 결코 그 어떤 꽃도 피울 수 없다는 것도 황홀입니다. 우리가 기대는 것은 왜 사람이어야 할까요. 왜 사람을 거쳐서 성장하고 우리는 완성되어야 할까요. 혼자여서 불안한 것은 마땅히 이해되는 불안이지만 옆에 아무도 없어서 불안한 것은 왜 그토록 무서운가요.
– 이병률, <내 옆에 있는 사람> 중에서
(글의 제목은 이병률 시인 산문집 <내 옆에 있는 사람>에서 차용해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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