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장르문학의 변천史
대한민국은 세계 도서 출판율 7위에 위치한 출판 강국으로 독서가 이미 생활의 일부로 자리잡은 상태다. 하지만 일반 대중들에게 읽히는 책의 종류를 알아보면 학습서나 자기계발서 등 흔히 실용적이라 여겨지는 분류의 책이 대부분이다. 이에 비해 문학은 상대적으로 외면을 받는데, 그렇게 선호도가 떨어지는 소설류의 도서 중에서도 꾸준히 일정하게 관심을 끌고 있는 도서가 바로 장르소설이다.
장르소설이란?
장르소설은 간단히 정의하자면 대체로 대중의 흥미를 사로잡는 데에 중점을 두며, 판타지, 로맨스와 같은 특정한 장르의 형식과 구성을 따르고 있는 소설을 일컫는다. 한국에서 장르문학이 처음 대중화되어 읽히기 시작한 시기는 90년대부터이고, 그 역사는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보다 전통적인 순수문학의 역사에 비하면 매우 짧게 느껴지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장르문학은 급속도의 변화를 거치며 새로운 형태로 일신해 왔다.
장르소설의 대중화
장르소설의 대중화는 PC통신이 아직 인기를 얻는 중이던 90년대 후반에서부터 시작한다. PC통신은 특정 사업자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통해 고정된 전용 망을 사용하는 형태의 통신방식으로, 인터넷이 보급되고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가 생기기 전 그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용자들이 이러한 PC통신 서비스를 이용해 자신이 집필한 소설을 연재하던 것이 대중적인 장르문학의 시초이다.
당시 각광받던 장르는 영국이나 미국 장르소설에 원형을 둔 서양식 배경의 판타지나, 무림을 소재로 한 무협이 주가 됐다. 대표적인 작가의 예를 들자면 판타지 소설 시리즈 <드래곤 라자>를 집필한 이영도 작가가 있다. 그 외에도 무협소설 <태극문>으로 인기를 끌었던 용대운 작가와 오컬트 판타지 소설 <퇴마록>을 연재한 이우혁 작가 역시 인지도가 있다. 당시 장르소설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일반적인 독자들이나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컸던 이 작가들의 작품을 살펴보면 공통된 특징으로 뛰어난 흡입력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드래곤 라자>
종이책 출간, 대중성 작품성까지
물론 세부적으로 보자면 특히 문체를 비교했을 때 큰 차이가 있다. 이우혁은 다소 단조로운 문장력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하고, 그에 반해 이영도는 <폴라리스 랩소디>, <눈물을 마시는 새> 와 같은 이후 작품들에서 극도로 순수문학적인 문체와 주제 전달을 보여준 바가 있지만, 이들 모두 흡입력 있는 전개로 독자를 작품에 집중하게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은 똑같다.
해당 작가들의 작품이 종이책으로 출간되어 팔리면서 수익성까지 증명되자, 대중성은 어느 정도 확보했으나 작품성에서 크게 밀리는 아류작들이 우후죽순 출간되는 부작용까지 있었다. 이러한 아류작들은 “양산형 판타지 소설”, 줄여서 “양판소”라 불리며 멸시 받았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행하는 요소들을 다량으로 도입한 대중적인 플롯 덕분에 인기는 여전히 얻을 수 있었다.
인터넷 소설 연재 사이트 등장
하지만 장르소설은 PC통신이 쇠퇴하고 인터넷이 대중들에게 보급되면서 큰 변화를 겪었다. PC통신의 특성을 어느 정도 이어받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연재되는 소설들도 분명 있지만, 점차 장르소설의 연재에 완전히 중점을 둔 “조아라”나 “문피아”와 같은 인터넷 소설 연재 사이트들이 생겨났고, 현재에 와서는 “네이버 웹소설”, “카카오페이지” 등의 소설 연재 플랫폼이 과거 PC통신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했다. 현대의 인터넷 장르소설은 “웹소설”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소설들과 구분되어 불리며, 그 특징 역시 시대의 변화에 따라 크게 달라졌다.
다양한 웹소설
우선 가장 큰 장점으로 장르의 다양화가 있는데, 극초기에는 인지도가 없다시피 했던 로맨스와 같은 장르가 현재는 여성을 타깃으로 한 다양한 웹소설에 쓰이고 있다. 그 외에도 기존 판타지 소설에서 현대 한국의 도시를 배경으로 바꾸고 레벨과 같은 게임적인 요소를 접목한 “한국형 게임 판타지 소설”이 등장하기도 하면서 기존 장르의 변화 역시 이뤄졌다.
또한 전체적으로 판의 규모가 커진 것도 장점으로, 인기 웹소설이 만화나 드라마, 영화로 만들어져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 장르문학의 인지도를 어느 정도 높이는 데에 성공했다. 예를 들어 웹소설 <나 혼자만 레벨업>은 만화로 만들어져 국내외로 큰 인기를 얻고, 일본에서 단행본 판매량 100만부를 돌파하기도 했다. 만화 외에도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게임이 개발 중에 있다.
<나 혼자만 레벨업>
“~물” 틀에 갇힌 웹소설
다만 웹소설의 단점 역시 명확하다. 장르의 다양화는 분명한 장점이지만, 그 대신 요소의 고착화가 심각해졌다. 장르의 큰 틀 안에서도 “~물”이라 불리는 작은 틀이 많이 생겨났는데, 도시를 위협하는 괴물을 사냥하는 사냥꾼들이 등장하면 “헌터물”, 주인공이 혼자만 과거로 회귀해 이미 겪었던 역경들을 다시 헤쳐나가는 전개라면 “회귀물”인 식이다.
큰 장르를 공유하더라도 전개나 인물, 배경에 있어서 차이가 있어야 독창적인 작품이 탄생할 수 있는데, 많은 웹소설들은 편의적으로 각종 인기있는 “~물” 요소들을 채용해 서로 비슷비슷한 레퍼토리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휴대폰 독자를 위한 웹소설 문체 탄생
지나치게 단순해진 문장력도 사람에 따라 단점이 된다. 이는 기술력의 발전이 오히려 해가 된 아이러니한 경우로, PC통신 시절에 컴퓨터만 사용되다가 편의성이 높은 핸드폰이 널리 보급되자 사람들은 작아진 화면으로 글을 읽기 시작했다. 긴 문장이 사용되는 세밀한 묘사는 넓은 컴퓨터 화면을 통해 전달하기에 무리가 없지만, 작아진 핸드폰 화면으로 읽을 경우 가독성을 심하게 해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배경과 등장인물의 심경 등을 몇 줄로 간략히 전달하고, 묘사보다는 인물의 대사에 기대어 전개를 펼치는 현대 웹소설의 문체가 탄생한 것이다. 지나치게 단순화된 문체는 문화생활에 투자할 시간이 급격히 적어진 다수의 현대인들에게 확실한 이점이 되지만, 이를 싫어하는 독자들에게는 과거 컴퓨터로 읽힐 것을 전제하던 PC통신 소설들에 비해 문학적으로 형편없다는 평을 듣는다.
장르소설의 변화, 진화? 퇴보?
한국의 장르소설은 짧은 역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단기간 내에 급진적인 변화를 거쳐왔다. PC통신 시절의 장르소설은 세계적으로 인기있던 장르를 가져와 사용한 반면, 현대의 웹소설은 한국 장르소설판에서 외면받던 장르를 채용하고 기존 장르의 창의적인 변형을 꾀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과 함께 떨어지는 문학성, 전개의 고착화와 같은 단점 역시 생겨났다. 한국 장르소설이 겪은 변화들을 결과적으로 진화로 여길지, 퇴보로 여길지는 그 독자들의 몫이며, 앞으로 장르소설이 거쳐갈 변화를 지켜보는 것 역시 독자의 의무가 될 것이다.
학생기자 윤재인(상해중학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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