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푸시 지역 봉쇄 전날 밤, 비까지 내려 기분도 뒤숭숭하던 밤이었다. 낯선 전화번호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상대방은 다급한 목소리로 빠른 중국어를 쏟아내고 끊어버렸다. 얼추 알아 들은 단어 몇 개로 추측해보면 곧… 배달… 찾아가라…. 는 의미 같았다. 주문한 것도 없는 데다 대부분의 배달도 다 끝난 시각에 내 물건을 배송하고 있다니. 잘못 온 전화인가 싶었는데, 같은 번호로 또 전화가 왔다. 아파트 정문에 물건을 두고 가니 찾아가라고. 이상했고, 긴장도 되었다.
배달 물건 보관소에는 아직 주인이 찾아가지 않은 종이 상자와 비닐봉지들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장미꽃 한 다발이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내며 놓여 있었다. 설마 하며 꽃다발에 쓰여있는 주소를 보니 우리 집이었다. 이 시국에, 이 시각에, 장미꽃이라니. 게다가 좀 전까지 누군가의 정원에 있었던 것처럼 싱싱하고 달콤한 향의 빨간 장미였다.
그녀였다. 늘 기발하고 따뜻한 서프라이즈 선물로 나를 감동시키는 그녀. 상하이 봉쇄 소식을 듣고 그녀답게 우아하고 센스 넘치는 응원을 북경에서부터 보낸 것이다. 이 꽃들을 보면서 버텨보라는 메시지와 함께. 봉쇄되기 전날 밤에 꽃을 배달해줄 수 있는 곳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아마 꽃 값도 평소보다 훌쩍 뛰었을 것이다. 비 맞은 장미 꽃다발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꽃 한 다발이 이다지도 포근할 수 있는지를 또 한 번 느꼈다.
그 즈음에는 봉쇄기간을 대비하느라 식료품과 생필품을 사러 다니느라 분주했다. 물, 쌀, 라면 등이 부족할까 싶어 눈에 보일 때마다 사고 또 샀다. 생존에 급급했던 내게 예상치 못한 꽃 선물은 팽팽하던 일상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꽃이 사치품으로 느껴지던 시기도 있었다. 행여 누군가에게 꽃 선물이라도 받으면 황송한 마음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꽃 보단 밥, 밥 보단 술을 더 좋아하던 자칭 실속파 시절을 오래 보냈다. 언제부터인지 꽃에 대한 빗장이 스르르 풀렸다. 꽃 선물을 하는 것도, 받는 것도 좋아졌다. 꽃이 좋아진 나이가 되어버린 것 일까. 어쩌다 보니 꽃 좋아하는 지인들이 주변에 있어서 그 영향을 받은 것 일까. 엄마 닮지 않아 예쁘고 귀여운 것을 보면 감탄하는 딸내미를 둔 탓 일까. 어쩌면 꽃 자체보다는 나를 생각하며 꽃을 골랐을 상대의 마음을, 상대에게 어울리는 꽃을 고심하며 고른 내 마음의 가치를 알게 되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일주일 넘게 이어지는 봉쇄 생활에 나도 장미도 시들시들해져 가고 있다. 하지만, 봄 햇살을 마음껏 쬐는 것조차 사치스러운 지금, 거실 한편에 꽂혀있는 장미의 존재가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른다. 우리 천천히 시들어가자고 마음속의 말도 건넨다. 한 번씩 장미꽃에 코를 묻고 그 향기를 깊게 들이마셔보기도 한다. 시들해질지언정 향기는 점점 더 진해지고 달콤하다.
그녀의 응원은 잘 도착했고, 여전히 그 효력을 발휘하는 중이다.
레몬버베나(littlepo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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