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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봉쇄는 언제 풀리나

[2022-04-22, 18:14:49] 상하이저널

이대로, 이대로가 좋다. 좋다고 생각하면서 세계가 이렇게 좁아졌구나, 라고 중얼거린다. 내가 친숙했던 세계는 이제 오직 상상 속에만 있다. 그 세계는 이제 이름하여 ‘외부 세계', 내지는 거창하게 '가상의 세계'라고 부를만하다. 나는 지금의 세계에 완전히 익숙해졌다. 까마득한 옛날 같아서 벌써 22년째 가택 연금에 주거지 연금을 당하고 있는 정치범이 된 것은 아닌가 하고 상상도 해본다. 아침에 일어나면 회사에 출근할 준비를 하는 것이 당연했었다. 지금은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생각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생각도 나지 않는다. 

벌써 노년기에 접어들어 집에서 양생을 하고 있는 삶이라도 된 듯하다. 아니면, 아주 오래전부터 할 일이 마땅하게 없는 인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라는 느낌이 든다. 외부 세계라는 것이 있기는 있는 것인지, 기껏해야 온라인으로 훔쳐보기만 할 뿐이지만 그것이 가상인지 현실인지 나와는 무관해져버렸다. 나에게 허락된 공간은 아파트 단지, 담벼락 안쪽이다. 이곳은 마치 새로운 세상처럼 좋다. 한번 좋다고 생각하니 생각할수록 좋아진다. 

까마득한 옛날, 집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할 때, 맞은편 집에서 문이 열리고 누군가 나오면 서로 인사는커녕 아는 체조차 하지 않았다. 쑥스러워 눈길을 피하고 조심스럽게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 공간을 공유하는 사람들과는 서로 아는 체를 해서는 안 된다는 금기율이 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흉악범은 아니더라도 괜히 타인을 괴롭힐 의사가 있는 사람이라고 오해를 받을까 걱정해야 했다. 나이 먹어 보기에도 추레한 중년 남자가 마치 부끄러워하는 소녀처럼 다소곳한 자세를 유지해야 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여 그들 곁을 떠날 수 있는 순간이 되어야 표정과 몸동작이 풀어져서 걸음도 가벼워지곤 했다. 몇 년을 살았는데도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는 고사하고 같은 동에 한국인이 몇 가구 거주하는지도 몰랐다. 그분들에게 인사를 나누며 살지도 못했다. 하물며 중국인 이웃들에겐 더욱 그렇게 살았다. 자주 마주치는 분에게 눈 인사나 가끔 한 마디 인사를 꺼내기도 했지만, 마음은 언제나 멀리 있는 사람에게 더욱 따뜻하게 열려있곤 했다. 

마음이란 것이 집으로 돌아올 때는 자기 집 현관 문을 꼭 잠그듯 아파트 1층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1층이나 엘리베이터나 계단에서 마주치는 사람에게는 꼭꼭 자물쇠를 채우게 되는 것 같았다. 세계를 안고 있던 원의 테두리가 내 집을 향하여 수축되자 내 세계는 이제 아파트 단지 안으로 축소되었다. 처음에는 집 바깥이 그리웠다. 그 후 집에 갇혔던 세계가 조금 바람을 불어넣은 풍선처럼 아파트 단지의 담장 경계선 안쪽까지 확대되었다. 집에서 나와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낮엔 햇볕이 따사롭게 이 세계에 속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놀거나 엄마 아빠와 함께 잔디밭 위에서 뛰어다니고 있다. 캠핑용 텐트를 쳐놓거나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는 어른들은 그 아이들을 바라보며 햇빛에 사르르 나른하게 자신의 몸을 용해시키고 있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차피 경계 밖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없다. 실물을 볼 수 없는 그들과 화상으로 만나더라도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 맞잡을 수 없다. 이렇게 되니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과 마음 문의 빗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위챗에는 내가 원해서 있든 어쩔 수 없이 빠져나가지 않아서 있든 많은 단체방들이 있다. 이런 단체방들은 밤늦게 혹은 새벽 이른 시간에 메시지를 주고받는 일이 많지 않다. 요즘 같은 동에 사는 모든 가구를 모아 놓은 단체방은 밤 12시가 넘어서까지 또 이른 새벽부터 메시지가 뜬다. 그 방 안에서 단체로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개인 간의 소통도 이루어진다. 채소나 쌀과 육류 등 먹거리를 사는 일을 공동구매로 해결하기 위해서 소통을 하기 시작한 이 방에서 요즘은 자기가 만든 음식 자랑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갓난아기가 쓸 기저귀를 옆집에서 얻기도 한다. 집에 꼭 필요한 무언가가 없을 때 뭐든지 이 방에서 이야기를 하면 누구나 여유 있는 사람은 적극적으로 나누기를 좋아한다. 


이렇게 이웃으로 22년을 살아온 것처럼 22일째인 우리는 이제 엘리베이터에서 만나거나 1층 현관에서 만나면 누구에게라도 먼저 인사를 한다. 몇 호에 사는지, 이름이 뭔지 몰라도 상관없다. 그 사람은 분명히 내 아파트 단지에 살고, 그것도 같은 동에 사는 사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옛날 옛적에는 왜 이 분명한 사실을 사실이 아닌 것처럼 둔감했을까. 몸은 여기에 있고 생각은 다른 곳에 살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웃이 가장 조심해야 할 위험이라도 되는 양, 우리는 먼 곳에 살고 가까이에선 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이대로 살면 좋겠다. 사는 것이 어제를 살아가는 일도 아니고 내일을 살아가는 일도 아니란 것을 자주 자신에게 깨우치게 하듯 지금 오늘이 사는 일의 전부라면, 오늘이 바로 천국의 시공간이 아니겠는가. 단둘이 마주 앉아서 그의 이야기를 오래 들어본 일이 없더라도 당신이 내 앞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당신에게 미소를 보내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이 좁아진 세계가 우리가 기필코 가고 싶다던 행복의 세계가 아니었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여기를 탈출할 수 있게 되면, 우리는 다시 그 옛날로 돌아가서 그때처럼 친밀감을 느낄 수 있고 서로의 속을 조금씩이라도 알아서 좋아하는 사이들끼리만 인사하며 사는 그런 생활을 반복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서 삶은 응당 자주 외로워지고 괴로운 일도 만나기 마련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세계에서 저 세계를 상상하는 일만큼 어처구니없는 일도 없으리라. 부처를 따르는 신자처럼 "아제아제 바라아제(가세 가세 건너가세)"를 외우며 저 피안의 세계로 건너가려는 '불성의 깨우침'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이곳에 살아야 한다. 심하게 말하면, 우리의 삶이 언제 그 마지막 햇빛을 우리에게 보여줄지 알 수 없지 않은가. 아파트 정문 밖에 나갈 수 있기 전에 해와 달의 존재와 작별할 수도 있다. 너무 뻥을 치는 이야기라서 설마 그렇기야 하겠냐 하고 생각할 수 있긴 하지만, 우리는 매일매일 오늘, 딱 오늘만 살아간다. 그러니 봉쇄가 언제 해제될 것인가를 헤아리는 일로 자신을 괴롭힐 필요는 없다.

봉쇄 해제? 그런 것 없다. 이 생활이 하도 오래되어서 몸도 마음도 '해제'라는 단어를 잃어버렸다. 차라리 내 마음속에 잠가두었던 이웃에 대한 문을 확실히 해제하고 살아가는 지금이 더 좋다. 이렇게 살 수만 있다면 무엇을 더 바랄 게 있겠는가. 적지 않은 돈을 쓰며 지구 반대편 어느 남국의 해변가에 여행을 가든 유럽의 어느 오래된 예술 거리에서 에스프레소나 와인을 마시든, 자기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을 향하여 단단하게 문을 걸어 잠가둔 마음으론 이 세계를 잘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퀴즈를 해제할 답을 얻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묻는다. 언제 봉쇄가 해제될 것 같냐고. 답은 우리 안에 이미 와있다. 그걸 찾을 때 상상 속의 세계 속으로 다시 들어설 수 있고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간 우리가 잊었던 이웃, 같은 아파트 동에 사는 사람들과 단지 안에 살아가는 이웃들, 국적이 다르고 나이도 다르지만 소중한 내 삶의 동반자라는 것을 깨닫고, 그들에게 한 번도 제대로 열지 않았던 '닫아둔 마음의 문 고리'를 해제하는 것에 답이 있다. 이 도시에 사는 모두가 이웃에 대한 마음 문을 해제하고, 해제한 채로 살아가는 연습을 모두 마칠 때, 드디어 우리의 몸도 아파트를 벗어나 길거리로 나가고 회사에도 학교에도 커피숍이든 어디든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오랫동안 내 마음을 열어두고 지내왔던 보고 싶은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봉쇄 해제’, 그날은 언제 올 것인가. 그 동안 마음을 닫아두었던 우리와 물리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이웃에게 마음의 문을 해제한 후에 가능하다는 걸 깨우치는 봉쇄, 역설적이지만 참으로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는 오늘도 오늘만 생각하며 마음의 문을 해제하는 연습을 하며 산다.  

2022.4.22 오후

박상윤(상윤무역 대표, 25대 상해한국상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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