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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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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 삶의 중턱에 도달하여, 여기저기 노화되는 몸의 변화들을 부쩍 느끼다 보니 요즘은 자주 죽음에 대해서 묵상하게 되는 것 같다. 때마침 읽은 이 책은 본격적으로 죽음에 관한 공부의 시작이 된 책이었다.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아침의 피아노>는 김진영 선생이 암 선고를 받은 2017년 7월부터 2018년 8월까지 13개월 동안, 일상에서 길어 올린 길고 짧은 단상들을 휴대폰 메모장에 쓴 것을 책으로 묶은 글 모음집이다. ‘작가의 말’에서 김진영 선생은 이 책의 내용과 출간 의도에 대해 이렇게 쓴다.
“2017년 7월 암 선고를 받았다. 그동안 이어지던 모든 일상의 삶들이 셔터를 내린 것처럼 중단되었다.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고 환자의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렇게 13개월이 지났다. 이 글은 그사이 내 몸과 마음 그리고 정신을 지나간 작은 사건들의 기록이다. 환자의 삶과 그 삶의 독자성과 권위, 비로소 만나고 발견하게 된 사랑과 감사에 대한 기억과 성찰, 세상과 타자들에 대해서 눈 떠진 사유들, 혹은 그냥 우연히 눈앞으로 마음 곁으로 오고 가고 또 다가와서 떠나는 무의미한 순간들이 그 기록의 내용들이다. ”
삶의 끝자락에서 살아 숨 쉬는 모든 순간들을 으스러지게 껴안고 “가을날 마른나무처럼 때아니게 툭툭 꺾이는” 몸과 마음을 추스리며 끊임없이 자기 삶을 객관화시켜서 성찰해온 흔적들이라 마디마디가 진솔하고 절절하고 깊은 울림이 있는 농축된 문장들이었다. 그중에서도 “환자의 정체성”에 대해 사색한 문장들이 특히 다가왔다. 그 몇 대목을 옮겨본다.
-환자의 삶은 이중생활이다. 그는 세상으로부터 분리되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세상 안에서 산다. 이 존재의 패러독스 위에서 그는 자기만의 삶, 단독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면서 모두의 삶과 만나야 한다. (p87)
-누구에게나 몸 속의 타자가 있다. 환자는 그 타자가 먼저 눈을 뜨고 깨어난 사람이다. 먼저 깨어난 그 눈으로 생 속의 더 많고 깊은 것을 보고 읽고 기록하는 것-그것이 환자의 주체성이다. (p100)
-아침에 눈 떠서 생각한다. 나는 그동안 받기만 했다고, 받은 것들을 쌓아놓기만 했다고, 쌓인 것들이 너무 많다고, 그것들이 모두 다시 주어지고 갚아져야 한다고, 그래서 나는 살아야겠다고... ( p94)
-비 오는 날 세상은 깊은 사색에 젖는다, 그럴 때 나는 세상이 사랑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가득하다는 걸 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세상을 사랑하는지도 안다. (p92)
-한 생을 세상에서 산다는 건 타향으로 고향처럼 사는 일인지 모른다. 그러다가 어느 때가 되면 우리는 문득 거기가 타향임을 깨닫고 귀향의 꿈과 해후하는 것이 아닐까. 나 또한 그러하기를 바란다. 과연 내가 한 생이라는 타향의 삶을 잘 살았고 잘 살고 있는지 그것이 내내 걱정스럽긴 하지만...... (p62)
이렇게 세상이라는 타향을 깊이 사랑하고, 타향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갚아야 할 게 많아서 더 머무르고 싶었지만, 귀향길은 결국 그의 발걸음을 재촉한 모양이다. 아쉽게도 이 책은 김진영 선생 사후에 출판되었지만, 김진영 선생의 바람대로 많은 독자들에게 “성찰과 위안의 독서”가 되어주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영면에 들기 며칠 전에 썼다는 마지막 문장 “적요한 상태. 내 마음은 편안하다.”처럼, 김진영 선생이 돌아간 고향에서 편안하시길 바란다.
류란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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