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늘 돌멩이처럼 조용히 학교에 가서 맨 뒷자리에 앉는다. 말을 할 일이 없기만 바라면서. 선생님이 무언가 물어보면 모든 아이들이 소년을 돌아다본다. 아이들은 소년이 저희들처럼 말하지 않는다는 것에만 귀를 기울인다. 말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느라 뒤틀리고 일그러진 얼굴만 바라본다. 그럴수록 소년의 입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슬퍼하는 소년을 아버지는 강가로 데려간다. 그리고 말해준다.
“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말더듬이 아이였던 시인 조던 스콧의 실화를 시드니 스미스가 아름다운 그림으로 완성시킨 그림책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얘기다.
양쪽으로 접힌 페이지에 가득 담긴 소년의 얼굴. 눈부신 햇살이 역광으로 비쳐 빨갛게 보이는 소년의 두 귀가 강렬하게 다가온다. 소년의 마음을 펼치듯 페이지를 열면 물비늘 위에 가득 담긴 햇살이 쏟아져 나온다. 가녀린 소년의 등이 너무나 안쓰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강물 위에 우뚝 선 소년의 존재감이 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림책이 이렇게 눈부실 수 있다니!
하지만 더 눈길이 머물렀던 장면은 아버지가 소년을 가까이 끌어당겨 앉히고 함께 강물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아이들은 성장하며 저마다의 이유로 아픔과 갈등을 겪는다. 게다가 우리나라와 같이 동질성이 강한 사회에서 남과 다르거나 사회적 약자들은 자주 외톨이가 된다. 또래 관계가 중요한 아이들에게 이런 상황은 상처가 되고 자아를 위축시킨다. 홀로 남모르는 내면의 투쟁을 벌이고 있는 아이에게 우리는 얼마나 서툰 위로와 훈계와 대안들을 내놓았던가?
“아버지가 나를 강으로 데려가 주시면 외로움이 조금은 줄어드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강물 같은 내 은밀한 두려움에 대해서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셨어요. 아버지는 자연의 움직임 속에도 내가 더듬거리면서 말하는 것과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덕분에 나는 내 입이 바깥세상을 향해 움직이는 것을 즐겁게 지켜볼 수 있게 되었어요.”
조던 스콧의 말처럼 핵심은 솔루션이 아니었다. 자신의 고유성을 이해하고 스스로 이겨낼 힘을 기를 수 있도록 곁에 있어 주고 기다려주고 격려해주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래에게 맞고 들어와 속상한 아이에게 공감해주기보다 왜 바보처럼 맞기만 하느냐고 화를 내고 권투 도장으로 밀어 넣는 아빠는 아니었던가?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해볼 시간을 갖기도 전에 득달같이 때린 아이 엄마에게 전화부터 거는 엄마는 아니었던가?
도도하게 한 방향으로 일정하게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강물도 들여다보면 좁은 여울에서 소용돌이 치기도 하고 바위에 부딪혀 물살이 튀고, 완만한 경계에서 머뭇거리기도 한다. 아이들은 그렇게 성장한다. 그리고 우리도 앞서서 살아가며 그런 과정을 거쳐왔다. 우리가 그 길을 먼저 지나왔으니 아이들에게도 우리가 살아온 방식으로 살라고 말하는 것은 각주구검(刻舟求剑)에 다름 아니다. 먼저 간 것이 권력이나 정답이 되는 순간, 아이들은 더 이상 어른들과 대화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이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강물은 자연스레 꾸준히 흐르면서 더 큰 무언가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요. 자신의 길을 만들어요. 그런데 강물도 더듬거리며 흘러가요. 내가 더듬거리는 것처럼요. “
울고 싶을 때마다, 말하기 싫을 때마다 “나는 강물처럼 말한다” “나는 강물처럼 말한다”고 되뇌었던 소년은 커서 캐나다를 대표하는 시인이 되었다. 입 밖으로 꺼내어지지 못했던 수많은 언어들은 아름다운 시어로 빚어졌다.
우리 아이들이 넘어지고 좌절하거나 실수하고 실망하고 상처받을 때, 나는 아이에게 어떤 희망의 주문(呪文)을 말해줄 것인가? 우리 어른들도 강물처럼 넉넉한 품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을 위한 희망의 주문도 되뇌어 보자.
김건영
-맞춤형 성장교육 <생각과 미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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