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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송장구 '서산'(사진_정은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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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떠났다. 멀쩡한 모습으로 장례를 치렀다. 육개장을 몇 그릇 더 주문해야 할지 결정해야 했고, 조문객들에게 인사하느라 바빴다.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면 반가웠고 심지어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상실감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장례가 끝나고 며칠이 지나자,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피로하고 씻는 것마저 귀찮아졌다. 하루 종일 잠만 잤다. 느닷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언제 눈물이 나올지 예측할 수 없었다. 누군가와 수다를 떨며 웃고 있다가도 눈물이 났다. 어딘가 고장 난 것만 같았다.
삶이 힘들 때는 산에 오르라고 했던가. 고개를 들면 늘 산에 가로막혀 답답했던 한국과 달리, 상하이에는 산이 없다. 허둥지둥 산을 찾아 서산까지 왔다. 9호선 서산역에 내려 서산까지 가는 버스를 그냥 보냈다. 걷고 싶었다. 찬바람이 폐허가 된 가슴을 훌치자 나도 모르게 휘청거렸다. 마음은 가시밭길인데 발걸음을 내딛는 길은 잘 포장되어 지나치게 매끄러웠다.
동서산에 서서 서서산 위에 솟은 성당과 천문대를 바라보았다. 80년대 고속도로 건설로 동과 서로 갈라진 서산은 본래 하나였으나, 이제는 이토록 가까이 있어도 서로 가 닿을 수 없다. 서산은 이별을 온몸으로 겪어내고 있었다. 이별이란 사랑하던 이가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니다.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가 있는 곳에 가 닿을 수 없는 안타까움이다.
“그때 당신은 모든 있음들을 당신에게로 응집시켰지만, 그래서 당신만이 오뚝 있었지만, 지금 당신은 어디에나 편재한다. 당신이 없는 건 없어진 것이 아니라 당신이 풀어지고 녹아서 온 세상의 곳곳에, 보이는 모든 것들 안에 보이지 않는 대기 안에 속속들이 스몄다는 걸까.” (김진영 <이별의 푸가> 중)
서산성모대성당의 성모자상 앞에 섰다. 모든 걸 겪고, 모든 걸 알면서도 여전히 평온한 성모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정혼한 남편에게 의혹을 사기도 하고, 손가락질당할 씨앗을 태에 품고, 아프게 낳은 아들을 멸시와 조롱 속에 십자가에 달았던 성모의 얼굴은 평안 그 자체였다. 이 세상 그 무엇을 잃어도 아쉽거나 두렵지 않은 상태.
눈을 감았다. 감은 눈꺼풀 사이로 눈물이 흘러나왔다. 순간 눈물을 닦아주는 부드러운 손길을 느꼈다.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차가운 조각상이라는 산문적 논리를 넘어, 성모의 손길이 시적 진실이 되어 내게 따스한 위로를 전해주었다. 울고 있던 내 얼굴을 어루만진 건 성모의 손이었지만, 분명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이의 손이기도 했다. 다시는 만져볼 수 없을 줄 알았던 그리운 손. 이 세상에서는 영영 다시 만날 수 없다고 해도,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한 그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위로해 준다.
서서산의 대나무길을 천천히 걸어 내려온다. 나는 잃었으나 잃지 않았고, 더 이상 외롭거나 두렵지 않다. 물기 가득한 바람 한 자락이 슬쩍 건드리고 지나치나 싶더니 곁에 잠시 머문다.
(사진_ 정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