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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은 | 옐로브릭 | 2016년 3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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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성장하는가
'멋있으면 다 언니!’라는 제목의 책이 있던데, 나는 이 언니가 참 멋있다. 바로 ‘박정은’ 수녀다. 박정은 수녀가 쓴 <사려 깊은 수다>는 다양한 원꽃 문양들과 노란 띠지로 장식된 책 표지에 “여성은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성장하는가”라는 부제가 쓰여 있다. ‘수다’는 사전적 의미로 ‘쓸데없이 말수가 많다’는 뜻의 단어다. 하지만 ‘사려 깊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니 어쩜 이렇게 근사한지!
우연히 그녀가 기고하는 가톨릭 신문에 실린 글을 읽었다. ‘미국에 이런 한국인 수녀님이 있네?’ 싶어서 폭풍 검색을 했다. 펴낸 몇 권의 책들, 인터뷰 기사들을 찾아보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쾌활하고도 따뜻한 여전사 같은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박정은 수녀는 1963년 서울 출생으로 현재는 캘리포니아 소재 홀리네임스 대학에서 영성학을 가르치고 있다. 가톨릭 뉴스 기자로 활동하다 28세에 수녀가 된 그녀는 잠깐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다가 여성신학을 접했단다. 한국에서 귀국을 종용했지만 이를 거부하고 공부를 계속하기로 결정, 결국은 한국수녀원에서는 강제 제명되는 상황이 되었다고…… ‘쫓겨난 수녀’라는 꼬리표를 달고 오랜 시간 동안 그녀가 연구한 주제들은 이주, 소외, 여성과 영성에 대한 것이었다.
<사려 깊은 수다>에서는 박정은 수녀가 20년 가까이 진행해 온 여성들을 위한 피정 프로그램인 ‘지혜의 원’이라는 활동을 소개한다. 첫 장에서 '지혜의 원' 모임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한다.
“혼자라는 생각에 마음이 쓸쓸할 때, 어디선가 불빛이 새어 나오고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와 웃음소리가 들린다. 주저하다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문을 두드렸는데 아주 편안해 보이는 자리가 당신을 위해 마련되어 있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각자 여행길에서 얻은 지혜를 나누는 시간이 주어졌다.
먼 길을 걸어온 사람의 이야기, 두려웠던 이야기,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고 그 안에서 발견한 의미를 챙겨 새로이 길을 떠나는 어떤 오두막이 있다면, 그 공간은 하늘나라일 것이다.”
여성들이 공동체(그룹)를 통해 자신을 알아가고, 또 그 안에 나누는 깊은 대화로 성장한다는 내용이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지혜의 원’이 어떻게 여성들에게 힘이 되는지, 여성이 고유한 정체성을 회복하는데 공동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소개한다.
2부는 여성의 몸과 성, 여러 감정을 알고 다루는 방법을, 3부에서는 실제로 모임에서 응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준다.
작가는 여성들이 자신의 감정을 다루는 훈련(이름짓기, 길들이기, 보내기)을 통해 자기를 잘 들여다보길 제안한다. 남편이나 자식 이야기나 뒷담화에서 벗어나 '자기’의 이야기를 하길... 또한 진심 어린 경청과 세련된 공감을 연습해야 한다고 말한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 판단하지 않을 것, 답을 주려 하지 않을 것, 남의 말을 자르지 않는 태도를 갖춘 세련됨 말이다.
저자는 이어 말한다. “우리 곁의 자매들이 소중한 까닭은, 평범한 일상을 같이 살아가며 우리 삶의 순간순간에 함께 마침표를, 그리고 느낌표를 찍어주기 때문이다. 그들은 삶의 고비마다 함께 가슴 졸이고, 함께 뛸 듯이 기뻐해 준다. 그들이 우리 삶의 중요한 증인들이다. “
이 문구를 읽는데 가슴 속에서 뭉클한 것이 올라왔다. 내 곁에 있는 언니들을 떠올려보았다. 교회 리더 모임, 학교 기도 모임, 독서모임까지... 크고 작은 공동체에서 나를 버티게 해준, 다시 일으켜주는 언니들... 언니들이 있어 이만큼 왔노라 고백하고 싶다. 그리고 나도 그런 언니가 되어 주고 싶다고 소망해본다.
스펙타클했던 지난 코로나 봉쇄의 이야기는 벌써 전설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 여정은 여전히 계속된다. 앞으로의 이야기들에서도 언니들의 활약이 기대된다.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의미를 발견해 가는 언니들, 넉넉함으로 사람을 품고 살리는 언니들. 세상의 모든 멋진 언니들 파이팅이다!
우리 사는 곳곳에 여성들의 사려 깊은 수다 모임이 풍성하길.
김영경
외국에 살다 보니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책벼룩시장방이 위챗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부터 한 주도 빼놓지 않고 화요일마다 책 소개 릴레이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아이의 엄마로, 문화의 소비자로만 사는 데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의 이야기를 상하이 교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