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는 건 슬픈 일이다. 다 알고 있다. 그래서 기대할 게 없다는 마음. 펑징구전(枫泾古镇)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내 마음이 꼭 그랬다. 한때는 짝사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애타게 그리워하기도 했는데, 오래된 결혼 생활처럼 권태기가 온 걸까. 언제부터였다고 그 시점을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실망의 순간이 하나 둘 쌓이다 어느 순간 선을 넘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도, 싫어하게 되는 것도 수많은 이유를 붙일 수 있으나, 실은 아무런 이유도 없다. ‘그냥’만이 정답일 것이다. 사랑에 빠진 이유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점이 상대를 떠나고 싶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하니까. 한때 도도함이라 여기며 사랑했던 그 모습이 이제는 오만함이나 무례함, 파렴치함으로 보인다. 순수함은 무지함과 뻔뻔스러움이 되었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동네를 산책하다 어제 보이지 않던 새로운 쓰레기만 보아도 그게 글감이 될 수 있다. 다른 시각으로 삶을 보고 싶어 집 떠나 낯선 곳을 찾아가면서도, 다른 한편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곳이 중국인 이상 새로울 게 없을 거라는 마음. 오랜 시간 뜨겁게 사랑했다 해도, 어느 순간 마음이 차갑게 식을 수 있다. 식은 마음으로 상대의 좋은 점이나 아름다움을 찾는 건 쉽지 않다.
사랑에 빠졌을 때는 그 이유를 줄줄이 읊어대도 좋다. 설사 100% 사실이 아닐지라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 이유를 듣다 보면 조금쯤은 그 설렘을 함께 맛볼 수 있다. 향기롭고 몽글몽글한 기운이 주변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사랑이 식었을 때는 입을 다무는 편이 좋다. 구구절절 늘어놓는 이유는 그저 변명일 뿐, 사랑이 식게 된 진짜 이유도 아닐뿐더러 해롭기까지 하다. 철없던 시절 그런 실수를 한 적 있다. 헤어지자는 나에게 그는 떠나는 이유를 끈질기게 물었다. 끝까지 입을 다물었어야 했는데, 집요하게 물어오는 그에게 그만 뾰족한 턱 때문이라고 말해 버렸다.
“사랑이 끝나면
말수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이 되어 미쳐 다닌다
내가 한 사랑이 겨우 그랬나 싶어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난 것이 몇 번이었나”
(이병률 ‘과녁’ 일부)
외모를 보고 그를 사랑했던 게 아니었으니, 그건 헤어짐의 진짜 이유 일리 없었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 지껄이다, 영악하게 그 스스로 열등감을 갖고 있던 지점을 건드렸던 것뿐이다. 그는 결국 양악 수술을 받았고, 나는 한동안 그 일 때문에 죄책감을 느꼈다. 다행히 가끔 화면에 나오는 그의 얼굴을 보니, 그가 내 헛소리 덕을 본 것 같아 미안함이 많이 줄었다.
헤어지는 것도 사랑의 일부다. 식어버린 사랑에 다시 불을 붙일 수 없다면, 그냥 침묵하는 편이 낫다. 헤어진 연인에 대해 너절하게 떠들어대는 것만큼 추한 것도 없으니. 사랑이 식는 건 내 잘못이 아닐지 모르지만, 식은 사랑을 잘 마무리하는 건 내 몫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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