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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 엄마의 영웅

[2020-04-02, 22:48:16] 상하이저널

올 겨울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의도치 않게 평생 들을 트로트 음악을 다 들어버렸다. 실제로 음악을 찾아 듣는 편도 아니고 더군다나 트로트는 내 취향이 아니었다.

코로나19로 일상이 멈춰버리고 친정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니 TV 시청도 부모님 취향에 따라갈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안 그래도 두 분이 늘 채널 선택을 두고 팽팽한 기싸움을 하시는데, 잠시 방문한 딸에게까지 그 선택권이 주어질 리가 없었다.

부모님이 가장 많이 보시는 프로그램은 뉴스. 그것도 여러 채널에서 하는 비슷비슷한 뉴스를 시간차를 두고 보신다. 그리고 두 번째가 바로 ‘미스터트롯’이었다. 이미 본방송을 보셨어도 재방송을 하고 있으면 보시고 또 보신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 당락도 이미 다 아시는데도 꼭 처음 보시는 것처럼 집중해서 보셨다. 특히 우리 엄마. 엄마는 어느새 임영웅이라는 참가자의 사소한 손짓 하나에도 감동하며 ‘찐팬(진성팬)’이 되어 가셨다. 

“임영웅이 입은 슈트 좀 봐. 얼마나 기품이 있니. 역시 다른 트로트 가수랑 다르잖아.” 

“임영웅이 이 노래 부른 것 좀 다시 들어봐. 어쩌면 원곡 가수보다 더 잘 부를 수가 있을까.” 

엄마는 TV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모자라 인터넷으로 임영웅 노래 동영상을 반복해서 보셨다. 그 덕분에 엄마가 휴대폰을 사용하신 이래 처음으로 데이터 용량을 다 사용한 기록도 만드셨다. 아빠가 반 질투로 “이제 그만 좀 하시오” 라고 하신 후부터는 나와 그 팬심을 나누고 싶어하셨다. 임영웅이 노래 잘 부르는 것은 인정, 하지만 나는 내 일상에 임영웅까지 챙길 생각은 없으니 엄마의 열정이 부담스럽고 귀찮기도 했다.
  
사실 엄마가 무엇에 그렇게 푹 빠져서 소녀같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오히려 섬세한 감정표현보다는 대범하신 쪽이었다. 그런데 문득 한때 ‘덕질’ 좀 했던 사람으로 동지애를 느꼈다. 아니 나는 엄마를 닮았던 것일까. 

1988년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우연히 TV에서 본 대학가요제 마지막 순서. 그 참가자의 공연을 본 후 나는 첫사랑에 빠졌다. 무한궤도의 노래를 테잎이 다 늘어질 정도로 듣고 학교 앞 문방구에 무한궤도 사진이 새로 나왔는지 매일 기웃거렸다. ‘젊음의 행진’에 무한궤도가 출연한 날에는 방청석에 앉아 소리 지르는 것으로도 모자라 눈물까지 흘리는 또래들을 지켜보며 질투와 부러움을 느꼈다. 비록 나는 집에 있지만 방청객 못지 않게 호들갑을 떨고 소리를 지르다 엄마한테 많이 혼났다. 그래도 엄마는 내 편이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첫 시험 하루 전 날, 그 날은 신해철이 새로 만든 그룹 015B의 첫 콘서트였다. 나에게는 나의 첫 시험보다 신해철의 첫 콘서트가 더 중요해졌다. 엄마와 갈등이 좀 있었지만 결국 엄마는 나를 콘서트 현장으로 데려다 주고 콘서트가 끝날 무렵에 데리러 오셨다. 이제서야 엄마가 그 당시 얼마나 갈등하셨을지, 그리고 또 얼마나 현명하셨던 것인지 알 수가 있다. 지금의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나는 엄마를 응원하기로 했다. 상하이로 돌아와 임영웅 관련 기사나 노래 동영상을 톡으로 보내드린다. 임영웅 콘서트 계획이라도 잡히면 온 가족이 광속 클릭으로 티켓 예매에 도전할 각오도 되어있다. 일흔의 엄마가 누군가의 팬이 되어 활력이 넘치고 많이 웃으실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레몬버베나(littlepoo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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