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영화는 가까우면서도 멀리 떨어진 두 가지의 매체이다. 같은 언어 예술의 범위 안에 들지만, 스토리텔링과 몰입에 있어서 이용하는 장치들의 차이가 극명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문학작품의 영화화는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가벼운 걱정이 들기도 한다. 과연 어떤 식으로 책 안의 언어적 묘사를 다른 매체로 표현할 수 있을까? 또한, 각색된 영화의 이야기가 책이 가진 독특한 매력을 없애진 않을까? 김영하 작가의 장편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과 영화화되어 개봉된 동명의 영화 소개 및 비교분석을 통해 알아보자.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 문학동네 | 2013년 8월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은 70세에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은퇴한 연쇄살인범 ‘김병수’가 자신이 살해한 여성에게서 거둬들인 딸 ‘은희’의 남자친구 ‘박준태’를 자신과 같은 연쇄 살인범이라 직감하고, 그를 죽이기 위해 마지막 살인을 계획하는 이야기이다. 소설은 김병수가 일어났던 사건들을 1인칭 일기 형식으로 기록하는 독특한 구조를 세우며,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 그리고 점점 알츠하이머가 심해져 가는 그의 일상을 그려낸다.
소설은 새드 엔딩으로 끝난다. 딸 은희가 며칠째 안 보이는 사이 김병수는 경찰과 맞닥뜨리는데, 박준태가 실은 살인범이 아니라 김병수의 살인사건들을 취조하고 있던 경찰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설상가상 딸 은희의 비보와 함께 그녀가 입양 딸이 아니라 자신의 집에서 일하던 치매 노인 요양보호사였다. 결국 예전의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김병수는 알츠하이머로 인해 정신을 잃어가며 ‘ 공’(空)으로 돌아간다.
소설이 던지고자 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은 어렵지만, 복잡하지 않고 간결한 문체와 흥미로운 스토리, 암울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반전으로 인해 내용의 재미와 깊이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아 호평을 받은 소설이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범죄/2017/15세 이상/118분
•감독: 원신연
•출연: 설경구, 김남길, 김설현
영화의 줄거리는 영화의 초반까지 원작을 토대로 나름 충실하게 이야기를 따라가지만, 후반부에 민태주가 실제로 살인범이란 것이 드러나며, 은희를 납치한다. 김병수는 딸의 죽음을 막기 위하여 민태주를 쫓아가며, 결국 싸움 끝에 그를 죽이고 은희에게 자신은 그녀의 아버지가 아님을 알려주며 살인죄로 정신 병원에 끌려갔으나, 그가 살인의 기억을 잊기 위해, 그리고 은희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자살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이 난다.
원작의 반전을 줄인 '아쉬움'
배우들의 연연 '호평'
영화의 기본적인 시놉시스는 원작을 따라간 게 보이지만, 원작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결말과 반전을 바꿔버렸기 때문에 평론가들에게 혹평을 받았다. 악역이라고 볼 수 있는 박준태는 원작에서는 김병수가 살인범으로 의심한 진짜 경찰이었지만, 영화 속 민태주는 경찰의 신분을 가짐과 동시에 살인범이다. 또한 김병수의 딸 은희는 요양보호사가 아닌 실제로 김병수가 살인한 여성의 딸로 나온다. 소설 속 은희가 딸이 아니라 요양보호사인 사실이 김병수의 나빠져 가는 정신 상태를 표현하는데 좋은 장치였기에, 빼놓은 것이 다소 아쉬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영화가 일반 관객들에게는 괜찮은 평을 받고 흥행을 한 이유는 바로 배우들의 연기력 덕분이다. 원작과는 다르지만, 캐릭터들의 감정선을 자세하고 입체적으로 표현한 배우들에게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특히 알츠하이머로 무너져가고 있는 노인 김병수 역할을 맡은 배우 설경구는 캐릭터의 특성을 잘 살린 연기를 선보여, 많은 호평이 쏟아졌다. 또한 민태주 역할의 김남길, 은희 역할의 김설현 역시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 영화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을 받쳐준다.
작아진 주인공의 시점
넓어진 관객들의 시점
또 다른 차이점은 독자와 관객의 시각 차이이다. 소설은 주인공 김병수의 1인칭으로 쓰여졌다. 독자들은 그의 무너져가는 정신을 직접적으로 느끼고 그의 시각으로만 사건을 바라본다. 김병수 주위 등장인물들의 정체와 선악 관계를 끝까지 알지 못한다. 재미와 긴장감을 극대화하고 독자들에게 결말로 인한 신선한 충격을 준다. 하지만 영화라는 매체는 대부분 3인칭 시점으로 사건을 바라본다. 제삼자 입장에서 바라보면 김병수의 심리 상태를 정확하게 묘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보다는 민태주가 이미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명확하게 밝히고, 김병수가 민태주의 범죄를 추적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영화를 전개한다. 하지만 원작의 피와 살이라 할 수 있는 김병수가 삶에 느끼는 통찰을 대부분 배제해 버려 원작의 장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원작이 범죄 소설을 위시한 살인범의 삶에 대한 독백이면, 영화는 살인과 추리에 중점을 둔 스릴러물에 가깝다. 마지막에 하이라이트라고 불릴 수 있는 김병수와 민태주의 싸움 역시 원작에서는 나오지 않은, 관객들의 재미를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원작과 같은 깊이와 김병수의 심리 탐구를 원했던 관객들에게 영화화된 작품은 원작보다 상대적으로 얕은 아쉬운 스릴러물로 보일 수 있지만, 배우들의 강렬한 연기와 액션을 보러 간 일반 관객들에게는 괜찮은 영화가 아닐까 싶다.
학생기자 이한승(SAS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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