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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이야기] 올 것이 왔다, 갱년기 '대상포진'

[2020-05-13, 15:45:30] 상하이저널


최근 몇 년 전부터 지인들로부터 심심치 않게 ‘대상포진’에 걸려 고생했단 얘기를 들었다. 내 식구들 사이에서 직접 걸린 사람들이 없어 실감은 나지 않았다. 밤에 갑자기 너무 아파 앰뷸런스에 실려 갔다 왔단 사람까지 있었다. 죽진 않지만 한 번 걸려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된다는 말도 들었다.

모든 몹쓸 병이 그렇듯 나와는 상관없을 것만 같았다. 아니 나를 왠지 피해갈 것 같았다. 나쁜 예감은 빗겨가질 않듯이 나도 그때가 됐다. 갱년기. 나이에 따라 올 것 들은 어김없이 온다. 면역력과 상관없이 오는 것 같다. 코로나로 그 어느 때보다 잘 쉬고 잘 먹고 스트레스도 그 어느 때보다 없었는데 지금 걸린다는 게 정말 말이 안되지만 걸렸다.

무서운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 겁이 덜컥 났다. 인터넷 정보를 뒤져보니 처음 발생했을 때 제대로 치료만 받으면 큰 문제가 안된다고 한다. 발진 수포 발견된 후 72시간이 골든타임 이라고 한다. 이때 빨리 병원가서 항생제 처방 받고, 일주일간 꼬박 치료하면 후유증도 없다고 한다. 

처음 하루 이틀은 그냥 허리가 너무 아프고 오른 쪽 엉덩이가 저리면서 얼얼하게 감각이 둔해졌다.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냥 자세가 나빠 근육이 망가졌나 싶어 새벽 2시에 일어나 거실에 매트를 깔고 요가 영상을 보면서 허리 다리에 좋은 스트레칭 요가를 강도 높게 했다. 좀 효과가 있는 듯 했지만 여전히 근육이 아프고 엉덩이 저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아침에 뒷허리 엉덩이 윗부분에 가려움이 느껴져 살짝 긁었는데 너무 아팠다. 거울에 비춰보니 동전 크기만하게 살이 빨개져 있는 게 보였다. 순간 ‘대상포진 인가’ 싶었다. 

날이 밝아 바로 병원에 갔다. 일요일이라 피부과 의사가 출근을 하지 않았다. 절망스러웠다. 이틀간 잠을 잘 수도 앉아 있기도 누워있기도 고통스러웠는데 오늘 밤에 잠을 또 못 잘걸 생각하니 더 절망스럽고 괴로웠다. 잘 먹기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북어 계란 두부 파를 듬뿍 넣고 북엇국을 끓여 먹었다.  옆집 동생이 소식을 듣고 고맙게도 닭죽을 맛있게 해줘서 그것도 한 그릇 먹었다. 원래 양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몸이 안 좋고 영양소가 필요해서 그런지 소화 흡수가 빨리 빨리 되는 느낌이었다. 생각보다 많이 먹었는데도 괜찮았다. 몸보신한 덕분인지 그 다음날 새벽엔 잠을 잘 잤다. 

월요일 아침이 돼서 얼른 병원에 갔다. 대상포진 진단이 내려졌다. 약 한 보따리 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85세 정정한 할머니 한 분이 옆에 와서 본인도 약 한 보따리라고 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기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와서 이렇게 약을 받아 간다고. 당뇨병 고혈압 등등 몸이 종합병원이라고 말씀하신다. 나도 85살까지 살아남으면 저렇게 정정해 보이나 온갖 약 먹으며 세월을 보낼 생각을 하니 우울했다. 할머니 표정이 힘들고 불행해 보였기 때문이다. 

발생 한 지 72시간이 지나가는 것 같아 버스 기다리면서 얼른 일단 먹는 약을 먼저 복용했다.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 하면서 코로나로 한산한 바깥 구경을 하면서 집에 도착했다. 병원만 다녀 왔는데도 너무 피곤했다. 미래 수의사 지망생인 막내딸이 설명서를 읽더니 자못 진지하게 연고를 먼저 바르고 조금 있다가 분홍색 물약을 흔들어 다시 덧발라 줬다. 요즘 의사들은 약 사용 설명을 안해준다. 약 타서 바로 집에 가는 구조 이기 때문이다. 물어 봤으면 알려주긴 했겠지만 환자들이 늘 대기 하고 있어 중간에 껴들어가 물어보기도 쉽지 않았을 것 같긴 하다. 순서는 모르겠지만 먹고 바르고 다 했다.

몸관리도 잘해야겠지만 어떤 병에 걸리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병 들었음에 절망하지 말고 치료해 가며 너무 힘들거나 고통스러워 하지 않으면서 늙어갔으면 좋겠다. 늙고 병들어 감에 대한 내 나름의 철학을 갖고 살아야 할 이유가 필요한 것 같다. 조금은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그리고 덜 불행하기 위해서.

튤립(lkse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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