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주인은 누구일까? “사람”이라고 누군가 선뜻 말해도 그리 거슬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대답에 인류는 과연 당당할 수 있을까? 지구상에서 인류와 함께 공존하고 있는 여러 종들은 이 답을 수긍하는데 있어 억울함은 없는 걸까? 혹시 인류는 다른 종들에게 폐를 끼치면서도 억지로 은폐하면서 살고 있지는 않는 걸까? 생각해 볼 문제다. 인류가 불을 발견할 당시만 해도, 인류는 결코 지구의 주인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인류가 ‘지구의 주인’ 이라는 착각은 몇 가지 혁명적 사건에 의해서 비롯됐다. <사피엔스>라는 저서로 유명한 유발 하라리 교수는 이 혁명적 사건을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으로 꼽는다. 하라리 교수가 말한 세가지 혁명은 인류가 신체의 일부를 다른 어떤 종보다 잘 사용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다름아닌 뇌와 손. 뇌는 혁명의 근원이 되는 ‘생각’을 가능케 했고, 뇌의 지시를 받은 손은 실천이라는 방식을 통해 생각의 검증장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뇌가 제 기능을 다하고, 지속적으로 더 나은 생각을 쏟아 놓은 데는 불의 발견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인류는 처음 불을 발견했을 당시, 불의 다양한 쓰임새 때문에 스스로 놀랐을 것임이 분명하다. 불은 빛과 온기를 만들어주고, 맹수들로부터 방어와 공격을 동시 수행하는 무기가 되어 주었다. 어디 그뿐인가? 산에 불을 놓으면 순식간에 초원으로 바꿔주었고, 그 속에서 천연 바비큐 고기를 얻고, 익은 곡식의 새로운 맛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이 지점이 우리가 집중하고자 하는 대목이다. 화식(火食)의 발견. 호모사피엔스 종의 출현 이전의 유인원들의 상상도에는, 꾸부정한 자세에, 툭 튀어 나온 입, 업청나게 큰 치아와 턱뼈, 상대적으로 작은 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불을 이용한 음식의 가공 방식은 인류의 외양부터 바꾸어 놓았다. 화식 덕분에 인류는 큰 턱과 큰 치아가 필요 없게 되었고 대신 큰 뇌를 선물로 받았다. 나아가 음식을 익히는 일은 소화를 수월하게 해 주었을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던 기생충을 박멸해 건강에 도움을 주고 수명을 연장케 하는 덤까지 얻었다. 무엇보다 불에 익힌 음식의 색다른 맛을 발견하게 된 인류에게, 이제부터 음식은 단순 생존의 필요도구를 넘어 차원이 다른 새로운 세계의 접근을 가능케 한 징검다리와도 같았다. 물론 아직까지 인류는 사람보다는 동물에 가깝다.
다음 지면에 이어 질 <풀로 고기를 만드는 방법이 있다니>에서 소개 될 농업혁명, 즉 농작물재배가 가능하고 주변 동물 길들이는 방법을 터득해 축산이 가능한 시기에 이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전까지의 인류가 ‘성공적 약탈자’였다면, 불은 이제부터 ‘계획이 가능한 설계자’로 바꾸어 놓았고, 이는 곧 지구의 모습과 생태를 바꾸게 되는 갈림길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불은 음식을 만들었고, 음식은 사람을 만들었다.
류형호(어부사시사 대표)
음식의 혁명
①인류, 불을 발견하다
②풀로 고기를 만드는 방법이 있다니
③문명의 탄생과 음식
④대항해 시대와 음식의 교류 上 (대륙의 음식)
⑤대항해 시대와 음식의 교류 下 (바다의 음식)
⑥산업혁명 vs 음식혁명
⑦음식이 산업으로–공장서 음식을 찍어 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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