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슬보슬 비 오는 토요일 오전, 향긋하고 달콤한 캐러멜 마끼아또를 만들고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 쓴 샌드위치를 포장했다. 그녀가 갑자기 상하이를 떠나 다른 도시로 이사 가게 됐다는 말을 들은 지 채 한 달도 안됐다. 늘 그렇듯 시간은 성큼 와 버렸고, 아쉬운 마음에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볼까 싶어 커피와 샌드위치를 들고 나섰다. 바로 옆 동에 그녀가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든든했다. 함께 길을 나서며 잠시나마 나누던 대화들도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쿨하고 산뜻하게 작별인사를 나누고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어젯밤 내내 울어 퉁퉁 부은 그녀의 눈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몸도 마음도 주저주저하며 머물다 보니 공항으로 떠나야 할 시간이 왔다. 결국 나는 그녀가 택시 타는 곳까지 배웅하며 또 한 번 눈물바람을 하고 말았다. 지켜보던 보안 아저씨가 안쓰러운 눈길을 보냈다.
2주가 지난 후 또 한 번의 작별을 했다. 새해 들어 두 번째였다. 그녀와는 작년에 한 모임을 통해 알게 된 후 우리 아이들 학교 정보를 나누면서 대화할 기회가 많아졌다. 만나면 만날수록 대화의 주제는 아이 교육만이 아닌 우리들의 삶으로 확장됐다. 그녀는 에너지가 많았고, 새로운 것에 늘 흥미가 있었고, 엉뚱했다. 부끄러움이 앞서 나는 감히 시도도 못할 일들을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했고, 난 그녀의 대범함이 부러웠다. 게다가 그녀는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주었고, “맞아요”, “그렇죠”라고 늘 공감해주었다.
언젠가 식사 자리에서 나는 그녀 때문에 박장대소한 적이 있었다. 그녀가 긴 코트 안에 화려한 장식의 금색 레이스 드레스를 입고 나왔던 것이다. 머리도 드레스에 맞춰 우아하게 올렸고 화장도 특별히 신경 썼다. 전골에 소주를 마시기로 한 날, 그녀 자신의 드레스 코드였다.
“상하이에서 안 입어보면 언제 입어보겠어요. 그리고 언니들 재밌게 해 드리려고 제가 신경 좀 썼어요.” 그녀다운 대답이었다. 지금 안 해보면 언제 해보겠냐는 그 말은 나에게도 자극이 됐다. 그녀를 만날수록 내 마음도 젊어졌다.
비타민 같던 그녀가 상하이를 떠나게 되기로 결정된 후부터 난 그녀를 볼 때마다 “가지 마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아쉬운 마음을 최대한 다 표현했다. 환송 자리도 몇 번이나 가졌다. 악수하며 깔끔하게 뒤돌아 서는 이별에는 자신이 없었다. ‘이 사람들도 여기에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편안해지고 흐뭇해지던 순간들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상하이 살이 10년,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작별을 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헤어지는 것은 늘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조금 신경 더 쓰고 마음만 먹는다면 연락도 끊기지 않을 것이고, 영상통화를 통해 얼굴도 종종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난 오늘도 촌스럽게 눈물을 흘리고, 가지 말라며 찌질의 역사를 쓰고 또 쓴다.
한동안은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그녀들을 그리워할 것이다. 상하이는 내가 잘 지키고 있을게, 혼자서 나지막이 중얼거릴 것이다. 再见, 나의 그녀들.
레몬버베나(littlepool@hanmail.net)
*<아줌마 이야기> 코너가 올해부터 <허스토리 in 상하이>로 바뀌었습니다. 다섯 명의 필진들이 상하이 살면서 느끼는 희로애락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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