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그때도 오랜만이었다. 마침 설 쇠러 서울에 와 있던 친구가 둘째를 데리고 집 부근 카페로 나를 보러 왔다. 짧은 만남은 친구 남편이 데리러 오면서 끝났다. 가족 넷이 강원도 어디로 빙어 낚시를 간다고 했다.
친구 남편이 선전공항까지 우리 마중을 나와 주었다. 좋은 사람이다. 친구네 집은 분양 받아 인테리어하고 작년 6월에 입주한 새 아파트다. 남에게는 후하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도 허투루 쓰는 법 없이 알뜰하게 살았을 친구의 노고가 느껴진다.
“꿍시파차이 恭喜发财!”
신발을 벗으며 장난스럽게 외친다. 그리고 예의 그 시원스런 웃음소리와 환한 미소, 친구다! 우리들의 인연은 중국 살이 만큼 오래됐다. 비슷한 시기에 상하이에 온 친구네와 우리는 우연히 같은 아파트에 살았고, 그 집 둘째와 우리 첫째가 같은 반이었다. 매일 아이들을 보내고 맞으며 우리는 친해졌다. 친구의 집에서는 튀김이나 간장 조림 같은 고소하고 맛있는 냄새가 났다. 친구 집은 우리 아지트였다.
그러다가 남편들도 합류를 했고,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다. 넷이서 뭉치기도 많이 뭉쳤다. 따뜻하고 너그러운 이 부부와의 만남은 즐거웠고, 나에게 때로는 위안이 그리고 때로는 해답이 되기도 했다. 몇 년 후, 친구네는 선전으로 이사를 갔다.
“잘 잤어?”
친구 남편이 출근 준비하는 소리를 얼핏 들었지만 못 일어났다. 느지감치 방에서 나오는 나를 향해 친구가 물었고 나는 대답했다.
“그럼!”
어제 저녁 짐을 풀 때만 해도 그 방이 안 방이라는 것을 몰랐다. 우리한테 방 내어주고 건넌방에서 불편한 잠을 잤을 친구. 요새 배운다는 중국화, 막 취업한 아이들, 남편 은퇴, 건강, 전원 생활, 여행, 두 분만 계신 것이 걱정인 내 친정 부모님, 자기 꿈만 좇는 오빠 때문에 혼자 친정 어머니를 돌보는 친구의 고충, 진작에 상하이를 떠난 그때 동네 사람들, 그리고 매회 뉴스마다 나오는 사회적 이슈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얘기하고 또 얘기했다.
태양빛을 피하느라 북쪽으로 냈을 베란다 창 밖 전망을 보면서, 친구가 만들었다는 풍미 좋은 생강차를 한 잔씩 마시면서, 전철 비즈니스 칸에 타고 시내 쪽으로 이동하면서, 가성비 좋은 세트 메뉴로 점심을 먹으면서, 바다 건너 홍콩 쪽을 바라보며 선전만(深圳湾)공원을 걸으면서도 우리는 그랬다.
우리 어디에 이렇게나 많은 이야기와 시간 그리고 그리움이 살고 있었나. 이야기 속에서 친구는 내가 되고, 나는 친구가 된다. 아이들 놀이터에서 함께하던 그때,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고 힘들어서 만은 아니겠지만 어쨌거나 내가 누구인지는 잠시 접어두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젊은 우리가 지금 여기 있다.
“상하이 꼭 놀러 와, 진짜!”
몇 번이나 다짐하는 나를 배웅하는 친구의 미소에 서운함이 묻어난다. 차창 밖으로 자꾸 작아지는 친구를 돌아본다. ‘시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 주었다’고 생각한다. 매일 연락하고 수시로 통화하고 그런 건 잘 못하는 우리는 자칭 ‘쿨’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언제고 내가 “하오지우부졘러 好久不见了!”하고 소리치며 들어서면 함박 웃음을 띤 친구가 어제 본 듯 아무렇지 않게 “왔어?”하며 나올 것이라는 것을.
하이디(everydaynew@hanmail.net)
<아줌마 이야기> 코너가 올해부터 <허스토리 in 상하이>로 바뀌었습니다. 다섯 명의 필진들이 상하이 살면서 느끼는 희로애락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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